금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주목받은 이슈는 지난 5월 미국이 장승화 교수(서울대 법대 교수)의 WTO 상소기구 위원 재임명을 반대한 사건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WTO 전직 상소기구 위원 13명은 WTO 분쟁해결기구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의 재임명 반대는 “WTO를 위험에 빠뜨리고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WTO 상소기구는 해당 분쟁의 WTO 협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최종 심리를 내리는 기관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상소기구 위원은 최초 임명시 4년의 임기, 한번의 재임명 기회가 주어진다. 문제는 상소기구 위원의 재임명에 대해서는 뚜렷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WTO 협정 상에서는 상소기구 위원이 “한 차례 재임명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 위원의 임기를 종료시킨 단 한 번의 사례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모든 WTO 상소기구 위원들이 재임명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승화 교수의 재임명에 대한 미국의 반대는 그간의 암묵적 동의 관행을 뒤흔들었다. 많은 WTO 회원국들이 이로 인한 상소기구의 독립성 및 공정성 훼손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하였다. 상소기구 위원이 자신의 판결로 인해 재임명이 좌절될 수 있다는 전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향후 다른 회원국들도 재임명에 반대하게 되어, 결국 상소기구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하였다.

여러 국제재판소에서는 재판관에 대한 재임명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WTO 상소기구에서 재임명이 문제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짧은 임기와 WTO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다. 첫째, 위원의 임기는 4년으로 다른 국제 재판소의 재판관 임기(6~9년)보다 짧은 편이다. 즉, 재임명이 되지 않으면 4년만에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충분히 경험 있는 위원들이 상소기구를 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임명은 어느 정도 불가결한 측면이 있다. 둘째, WTO 의사결정은 투표가 아니라 총의(consensus)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 1개의 회원국(총 164개 회원국)이 반대해도 의사결정이 좌절된다. 소수에 의해 다수의 의견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분쟁해결기구에서는 상소기구 위원에 대한 재임명 제도를 폐기하여 단임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까지도 이는 “문제라고 볼 수 없는 부분을 고치자는 뜻”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될 기미가 높아진 가운데, WTO 차원에서도 분쟁의 양적 증가, 쟁점의 복잡성 증대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부담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1995년 WTO 설립 이래 우리나라는 33개의 분쟁에 직접 당사국으로 참여하는 등 분쟁 해결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국가이다. 따라서, 상소기구 위원 재임명 문제는 우리나라에게 무관하지 않다.

현재 WTO에서는 장승화 교수의 후임 위원을 선출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중이며, 오는 11월 23일 분쟁해결기구 정례 회의에서 최종 후보를 임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선출 절차에는 우리 측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한국외대 교수)도 참여하고 있어, 우리로서는 김 전 본부장을 당선시키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다자무역체제 차원에서의 완결성과 안정성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상소기구 위원 재임명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WTO 차원에서 회원국간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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