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12일 신군부 쿠데타에 의해 집권한 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 때의 일이다. 어느날 법원출입의 동아일보 육모 기자가 지금 고인이 된 김정현 서울지법 부장판사와 필자의 판사실에 불청객으로 들어와 임대차계약관계에서 임대인인 주인이 바뀌면 임차인인 세입자에 임대차관계가 승계되지 아니하므로 임차인은 세집에서 내쫓길 운명에 처한다는 점 등을 문제 삼으며, 이에 입법대책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어깨너머로 들었다. 그런데 아뿔사 그 이튿날에 동아일보 사회면 톱기사로 법원행정처가 임차인보호법안을 성안하였다고 보도하여 필자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법안에 대하여 시의에 적절하다는 어느 변호사의 코멘트까지 실렸다. 이 보도를 본 법원행정처는 너무 황당해 하고, 여기에 국보위는 대노하여 법원행정처에 “너희가 이 비상시에 서민생색 입법시도냐”고 야단의 경고를 하였다. 이에 법원행정처는 우리도 모르는 어이없는 일이라 변명하며 그 경위를 조사보고하겠다고 빌었다는 것이다. 그 뒤 기자와 어느 부장판사가 원초적으로 만들어낸 촌극임이 밝혀져 국보위에 사실대로 보고한 결과, 그렇다면 그 발상을 이용하여 이 기회에 우리가 서민임대차보호법을 만든다 하며, 국보위의 급조된 작품이 1981년 3월 5일 제정된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여기에 임차권보호를 위한 파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주택의 인도를 받고 주민등록신고를 마친 주택임차인은 등기하지 아니하여도 등록신고만으로 다음달로부터 등기된 임차권과 마찬가지로 대항력을 갖는다. 임대주택의 소유권이 매매나 경매에 의하여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도 임차권을 내세울 수 있다(상가건물임대차법은 사업자등록신고). 여기에 확정일자를 갖추면 등기없이 우선변제권이 생겨,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등기한 담보물권자와 같아지며, 등기임차권보다 강해진다. 경매 때 그 매각대금에서 배당받지 못한 보증금 잔액이 있으면 전세권자와 달리 매수인에게 그 변제시까지 법정임대차권을 주장할 수 있다. 더하여 소액임차인의 보증금 중 일정액(서울지역 1억원 중 3400만원)은 배당순위에서 제1순위로 등극을 하여(비슷한 일본의 단기임대차제도는 폐지), 선순위 저당권자에게도 우선한다. 나아가 임차보증금채권의 집행 때 임차인이 임대목적물의 인도제공없이도 집행을 할 수 있고, 소액임차보증금은 압류금지의 채권이 된다.

주택과 마찬가지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뒤따랐지만, 여기의 임차인에게 부여하는 예외적인 초특권은 영세서민의 보호용이라 하여도, 그 내용의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 용익물권, 담보물권, 유지적권리를 겸한 대세적 권리임에도 등기공시원칙의 예외로 되어 그 내용열람이 쉽지 않아 제3자에게 불의의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확정일자의 선임차인이 있음에도 등기공시가 안돼 이를 모르고 확정일자를 받은 선의의 임차인이 경매에서 후순위로 밀려 큰 피해를 입었다는 최근 보도가 있었다. 세무서에서는 사업자등록을 잘 보여주지 않고 이 특혜남용의 사이비임차인의 발호로 경매질서를 어지럽히는 혼세마왕(混世魔王)이 되는가하면 주택의 담보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졸속입법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만큼, 현 제도에 안주하기보다 선진국의 입법을 참작하여 폐해의 시정과 재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간이등기절차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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