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史劇)을 좋아한다. 마니아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때론 사료(史料)를 찾아가며 본다. 최근엔 KBS에서 방영한 ‘임진왜란 1592’를 재밌게 봤다. 드라마 곳곳에 제작진들의 땀 냄새가 묻어났고,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은 탤런트 김응수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5부작인 게 아쉬울 정도였다.

요즘은 정통 사극보다 배경이나 소재만 역사에서 가져다 쓴 퓨전 사극이 대세다. 사극의 주요 무대는 왕과 신료들의 정치판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현실의 세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역사적 상황이 시국(時局)과 맞닥뜨릴 때 배우들의 입을 통해 세태를 반영한 대사가 읊조려진다. 배경이 옛날 옛적이다 보니 주인공들의 활동도 제약이 덜하다. 똑같은 허구라도 왕이 될 세자(世子)가 역적의 딸을 사랑한다는 이야기(구르미 그린 달빛)는 로맨틱하지만, 유력 대통령 후보가 내란 수괴(首魁)의 자식과 연애를 하는 내용의 현대극은 방영에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장르도 로맨스에서 정치 스릴러로 달라진다.

2016년 국정감사가 끝났다. 방송인 김제동의 영창 발언에 대한 논란으로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장은 달아올랐다. 군에 대한 신뢰 실추를 염려하는 얘기가 나왔다. 헌신하는 장병들에 대한 신뢰는 여전한데, 군에 대한 신뢰는 별개인가 보다. “하도 많아서….” 작년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최근 방산비리가 심각한데, 대표적인 사례가 뭡니까?”라는 질문에 방위사업청장이 한 말이다. 김제동의 말이 거짓이라면 실망이지만, 적어도 그의 말이 군에 대한 신뢰를 크게 좌우한 것 같지는 않다.

언로(言路)가 꽉 막힌 느낌이다. 드라마에서 왕은 비판받고, 굴욕을 당하고, 때론 왕좌에서 쫓겨나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래선 안 될 존재 같다. 현실 세계 위정자(爲政者)들은 비판과 굴욕에 대한 내성(耐性)이 없어 보인다. 무슨 게이트에 오르내리는 누군가의 이름은 김소월의 시 초혼(招魂)에 나오는 표현처럼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되었고, 대중매체 뉴스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경험한 ‘그런 얘기하면 누가 잡아간다’ 식의 공포가 바이러스처럼 떠도는 것 같다. ‘옛날 천자에게 간쟁(諫諍)하는 신하 일곱명이 있으면 비록 무도(無道)하여도 천하를 잃지 않았다.’ 효경(孝經) 간쟁장(諫諍章)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사극에선 폭군도 저잣거리에서 자신을 희화화(戱畵化)하는 광대를 나무라지 않던데(왕의 남자), 국민들 상당수가 반응하는 얘기라면 그 진위도 중요하지만, 반응의 이유 또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사극에서 말고 현실에서 그런 고민을 하는 위정자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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