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320호 법정에서는 경남기업 대출 특혜 의혹으로 기소된 김진수 금감원 부원장보에 대한 판결이 선고됐다.

그는 2013년 경남기업에 대한 대출을 압박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고, 대주주인 고 성완종 전 회장에게 유리하게 무상감자(減資)없는 워크아웃을 진행하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농협에 10년치 금융자료를 요구하고 그로 인해 농협 담당자가 한달간 A4용지 30박스 분량의 여신심사자료를 복사했다고도 했다. 당시 검찰은 성 전 회장에게 자신을 금감원 부원장보로 승진시켜 달라고 청탁한 상태에서 이같이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했다. 자신의 승진욕심을 채우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여 ‘갑질’을 했다는 것이다.

18회에 걸친 재판을 끝내고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선고에서 이 같은 ‘갑질’의 흔적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인사청탁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면서도 그것 때문에 자료제출요구나 대출실행이 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자료제출요구는 여신규정을 위반한 농협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고 경남기업이 170억을 대출받은 부분도 “피고인이 부도여파를 고려해 여신지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조정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워크아웃 특혜’부분도 마찬가지로 금융기관이 먼저 무상감자 삭제를 제시했었다고 봤다. 유죄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not guilty)는 것을 넘어서 결백하다(innocent)에 가까운 판단이다.

이처럼 증거부족을 넘어서 기소 자체가 무리였음을 지적하는 듯한 판결문을 드물지 않게 본다. 대표적인 게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무죄판결이다. 그는 캐나다 정유업체 인수과정에서 5000억원의 국고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에도 법원은 꽤 긴 시간 동안 검찰의 기소내용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즉흥적 인수결정’이나 ‘부실한 사전심사’등의 정황만으로는 배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판결이 나자 중앙지검장이 직접 “법원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며 법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 만큼 검찰은 강력히 반발했지만, 판결 내용상으로는 부인할 수 없는 검찰의 완패였다. 이 사건은 지난 8월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지난해 3월 검찰이 경남기업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시작한 이른바 자원외교 비리수사의 산물이었다. 그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엉뚱하게도 ‘성완종 게이트’의 포문이 열리기도 했지만 시작은 전 정권 해외자원개발의 비리를 캐내려는 야심작이었다.

검찰이 ‘국민의 이름으로 기소했다’고 하는데 판단을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법원이다. 그렇게 대의명분을 갖고 하는 수사일수록 도덕적 질타가 아니라 구성요건에 맞는 증거의 보강을 철저히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힘들다면 아예 접는 게 낫다. ‘법률 실험’을 하기에는 몇달, 길게는 몇년동안 재판에 끌려다니고 무고하게 구속까지 되는 개인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 그들 또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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