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던 9월의 어느 날, 급한 접견이 있어 구치소에 갔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변호인 대기실에서 습관적으로 신문 맨 뒷면을 읽던 중, 가슴에 울림을 주는 글을 보았다.

글에는 영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일본의 검사는 무죄를 받으면 옷을 벗을 각오로, 판사는 자신이 한 판결이 상급심에서 파기되면 옷을 벗을 각오로 재판에 임한다고 한다. 이를 ‘一生懸命(잇쇼켄메이 :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정신’이라 부르며, 우리나라 검찰과 사법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법정스님의 ‘一期一會(일기일회 :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와도 닿는 말이다.

‘一生懸命’. 그간 내가 놓치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글을 읽고 난 후 필자는 크고 작은 업무에 있어 변호사 직을 걸고 임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단적인 예로, 피고인이 자백하는 사건인 경우 그 자백이 실체적 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를 스스로에 물었다.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재판에 있어 나의 최대한의 능력을 다하고 있는 지에 대해 성찰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재판들이 떠올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변호사는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고 인권을 수호하며 공공복리에 반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 또한 권세에 아첨하지 않으며, 직무 성과에 구애되어 진실규명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변호사의 기본적 책무이다. 이러한 책무에 앞서 실체적 진실 발견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의뢰인이나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충실해야한다. ‘一生懸命’의 길이다.

접견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가 지난 기간 작성한 기록의 변호인 의견서를 읽어보았다. 나는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이 내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작성했던 걸까. 생애 단 한번이라고 생각했던가. ‘一生懸命’, ‘一期一會’의 마음이 있었던가. 이번 기고는 2016년의 마지막이다. 그간 쓴 기고들을 돌이켜보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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