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정성호 의원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 토론회’ 개최
대법원에 집중된 인사권, 획일화된 법관 구성 등 문제 지적돼

대법관 인적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한번 제기됐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정성호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지난 17일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 토론회’를 개최했다.

하창우 협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나라 최고 법원이 사회적 가치와 다양한 이해를 담아내지 못하고 현직 법관을 위한 승진 제도로 운용되고 있다”면서 “이번 토론회는 대법관 구성 다양화, 대법관 수 증원 등 대법원 개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제발표자 정태호 경희대 법전원 교수는 대법원 인적구성이 획일화돼 있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역대 대법관은 ‘서울대를 나온 법관 출신 남성’이 대부분이고, 검찰 출신은 11명, 변호사 출신은 4명뿐이다. 특히 여성 대법관 수는 턱없이 적다. 1948년부터 현재까지 대법관 144명 중 여성은 4명에 불과하다.

다만 여성대법관 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히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토론자 박지연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는 “1990년까지 사법시험 합격 여성은 86명에 불과했으나 최근 로스쿨 입학자와 사법시험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40% 내외이므로 여성대법관 비율도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고위직 법관 출신 남성이 갖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자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노동자는 대법원 판결을 ‘노동권보다는 사용자의 이해에 민감하다’고 평가한다”면서 “법관 출신 남성 대부분은 사회 경험 없이 사법시험에 합격해 임용됐기 때문에 사회 문제를 법정과 기록에서만 보고, 격무로 인해 주변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외적획일성은 내적획일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박지연 한국일보 기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40%가 전원일치 판결이다. 2011년 선고 사건 17건 중 4건으로 23.5%에 불과하던 전원일치 사건은 2013년 18건 중 10건(55.6%), 지난해 25건 중 9건(36%)으로 늘어났다.

대법원에 집중된 인사권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법원장은 법관 임명 및 연임발령 권한을 갖는다. 현행법상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10년 임기로, 연임이 가능하다. 법관 연임은 인사위원회, 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발령을 내려야 가능하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도 독점한다. 이를 통제하고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했으나 대법원장 추천을 절차적으로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구조는 법관을 관료화한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 하고 있다. 플로어토론에 참여한 한 중견 변호사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권을 갖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다들 대법원장 눈치를 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 제시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판례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정태호 교수는 “튀는 판례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고, 대법원 판례를 깨기 위한 논증작업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 폭주하는 사건 속에서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법해석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외적획일성 타파 위한 직역할당제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 외적획일성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는 ‘직역할당제’가 제시됐다. 다만 정태호 교수는 “외적다양성은 실질적 다양성 확보를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라며 “직역할당제 등 필요 여부는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으나 당분간은 인위적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신수경 새사회연대 대표는 “대법관으로서 갖춰야할 법 전문성을 일정한 법조경력으로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대표성을 띤 법조인,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할 법조인 등은 관련 단체 등에 추천을 받는 방식을 도입하면 민주성을 최대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등 외국에서는 인적구성 다양화를 위한 여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는 재판관 지역별 할당제, 오스트리아는 일부 대법관직에 출신 직역별 할당제가 존재한다.

정태호 교수는 직역할당제를 위해서는 대법관 증원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법관이 아닌 법률가가 절반 이상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법관으로 12인을 추가해 대법관 24인이 소부 6개로 나눠 대법관 재판을 진행하는 방안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소부 3개는 각 대법관 4인으로 구성돼있다.

대법관 증원은 국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법원 업무 폭주로 인해 국민이 ‘재판 받을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없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토론자 이국운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국민은 상고사건 부담이 극심하다고 호소하는 대법원이 재야법조가 요구하는 대법관 증원 필요성을 부인하는 속내를 알기 어렵다”면서 “상고사건 폭주 문제를 국민 앞에 솔직히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동의요건 강화도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올랐다. 국회동의요건이 강화되면 특정 세력이 법원을 장악할 수 없으므로 사법부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국운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대법관 후보자가 자질이나 능력에 하자가 없더라도 대법원 구성이 헌법적 합당성을 갖추기 위해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회 공동주최자 정성호 국회의원은 “법 해석과 적용과정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시각이 치열하게 토론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면서 “토론회에서 나온 제언을 입법과 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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