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필요한 이유는 다양한 관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있다.

실무상 한 사건을 전공이 같은 의사들이 다르게 감정하는 예는 흔하다. 제왕절개수술 후 출혈사한 사건에 대하여 A산부인과의사는 “자궁수축은 유지되었다”라고 한 반면, B산부인과의사는 “자궁수축부전이 중요한 원인이다”라며 정반대로의 감정을 한 예가 있다.

또 분만지체로 뇌손상을 입은 사건에 대하여 C소아청소년과의사는 “대사성 산증이 없어 주산기 가사 이외의 다른 원인 병변이 존재함을 시사하는 소견이다”라고 하여 주산기 가사를 부정한 반면, D소아청소년과의사는 “주산기 가사로 인해 대사성 산증과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이 있었으며 콩팥 등의 여러 장기에 저산소성 허혈성 손상을 받았다”며 전혀 다른 감정회신을 하였다.

치료방법에 관하여도 감정인마다 견해가 다르다. 뇌농양수술을 위해 떼어낸 골편을 덮어 감염이 악화된 사건에 대하여 E신경외과의사는 “오염이 의심되는 골편을 뇌농양과 같이 제거하는 것이 원칙임”이라고 회신한 반면, F신경외과의사는 “골편의 상황을 확인한 집도의의 판단이 제일 정확하리라 봄”이라고 하여 두개골을 덮은 과실이 없다고 회신하였다.

전공이 다른 경우 같은 수술에 대하여 상이한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맹장수술 후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G외과의사는 “수술 후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마취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회신한 반면, H마취통증의학과의사는 “사고원인이 마취에 의한 것으로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한 외과의사에게도 공동책임이 있다”고 회신하였다.

신체감정의와 진료기록감정의도 같은 사건인데 원인을 다르게 감정한다. 외상 후 난청이 발생한 사건에서 I신체감정의는 “좌측 내이기능이 선택적으로 소실된 점으로 미루어 난청은 외상으로 인한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한 반면, J진료기록감정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돌발성난청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회신하였다.

이처럼 의료감정인마다 감정결과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복수감정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콘퍼런스제도를 통하여 3명의 감정인에게 같은 장소에서 토론을 하게 하고, 법원이 이를 지켜본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임상적 의견에 대해 전문가인 의사입장이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에서 이해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일부 법원은 한 군데에만 감정하도록 허락하는 경우가 있다. 항소심법원도 “1심에서 진료기록감정을 하였는데 그때 모두 하지 않고, 항소심에서 왜 또 신청하느냐?”며 보완감정조차 거절하기도 한다.

법원에 따라서는 전문의 1명을 전문위원 내지 조정위원으로 선정하여 재판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 전문의의 견해는 여러 의견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당해 사건에서 임상의학실천당시의 의료수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이는 의학준칙을 왜곡시켜 의학발전을 막고, 의료인권이 위협받을 위험이 있다.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지 못하고, 의사로부터 재판받는다는 불만이 생기게 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환자의 감정절차는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감정결과가 불리하더라도 그 부담은 환자몫이다. 환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다양한 감정회신을 받아, 그 감정결과가 임상의학실천 당시의 살아있는 의료준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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