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 산 지 6년째가 되어 간다. 군립(郡立)공원 천마산에서 산림욕을 하고, 여름이면 시냇물에 발 담그고 송사리 떼 구경하는 재미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버스로 10분 거리에 김근태 전 의원과 전태일 열사가 잠들어 있는 모란공원이 있고, 그 인근에 조지훈 시인의 묘소가 있다. 조지훈의 묘소는 그의 어머니 묘소와 나란히 있다.

조지훈의 고향은 경북 영양이다. 영양 주실마을은 한양 조씨 집성촌으로 조지훈의 생가가 있다. 조지훈은 어머니가 묻혀있는 남양주에 안장되길 원했다고 한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한결같았겠지만, 그에겐 어머니의 품이 또 다른 고향이 아니었을까?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언덕으로 머리를 둔다는 말이다. 마음 속 깊숙이 자리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경주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자랐다. “좋은 곳에서 자라셨네요. 수학여행 가봤어요.” 고향이 경주라고 소개하면 질리도록 듣는 얘기였다. 천년고도의 흔적은 생활 곳곳에 녹아 있었다.

초등학교 앞에는 봉황대(鳳凰臺)가 있었다. 몇몇 아이는 나라가 위급할 때 봉홧불을 올리는 봉화대(烽火臺)라고 우겼다. 다른 고분(古墳)에 비해 유달리 커 그 말이 그럼직했다. 이름이 ‘관창’인 친구도 있었고, 초등학교 이름도 월성, 계림, 화랑이었다. 매 주말 집 부근 김유신 장군 묘를 산보 삼아 둘러봤다. 왕궁터인 반월성 밑으로 흐르는 남천을 보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로맨스가 떠올랐다. 석가탑이 무영(無影)탑이란 이름 그대로 그림자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주위를 돌기도 했다.

후렴구가 ‘영원한 마음의 고향아’로 끝나는 고등학교 교가는 조지훈이 작사, 윤이상이 작곡했다. 진학한 대학의 교가도 우연하게 고등학교와 작사·작곡자가 같았고, 그 후렴구에도 ‘마음의 고향’이 있었다. 왜 시인은 그냥 고향이 아닌, ‘마음의 고향’이라고 거듭 읊었을까? 태어난 곳이 어디든, 정을 두고 그리워하는 곳이 고향이기 때문에 그리하였으리라 추측해 본다.

9월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경주가 특별재난지역이 됐다. 회복을 위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감사한 노릇이지만, 경사(慶事)스러운 고을(州)이라는 뜻을 가진 고향이 재난지역이 돼 가슴이 무겁다. 이제 고향이 경주인 줄 아는 지인들이 걱정스레 고향집 안부를 묻는다. “좋은 곳에서 자라셨네요. 수학여행 가봤어요.” 질리도록 들은 그 말이 이토록 소중한 줄 그 땐 몰랐다. 그 말을 다시 들을 날이 곧 오길 소망한다. 마음의 고향아, 힘을 내어라. 들르는 이마다 그리움을 갖게 하는 만인의 고향으로 회복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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