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가미 히사시(번역 윤현희), 중앙북스, 2016년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2013)’이 있더니, 이제는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이 있다. 이래저래,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고, 이웃인 일본과 중국도 모르나 보다. 32년간 한국과 중국을 지켜본 일본 외교관의 쓴소리로서, 외교가 실종된 대한민국을 논한다고 한다. 국내 정치도 편할 날이 없는데,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4대 열강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한반도. 게다가 위안부, 독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센가쿠, 북핵, 사드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 지리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긴장이 계속되는 한중일 3국.

히사시 외교관은 우리의 일본관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로 ‘공기(空氣)’와 ‘중국’을 지적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기’를 법적 용어로 굳이 치환하자면 ‘국민정서법’이나 ‘떼법’ 정도는 되겠다. 그는 민족 정서, 공기, 분위기에는 반하지만, 진짜 국가나 국민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정론’이라고 하면서, 근래 우리나라에는 1980~90년대에 비해 이러한 정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중국관에 대해서는 동남아(아세안)를 본받으라고 한다. 압도적인 중국 경제의 영향권 아래 있지만, 외교, 안보 면에서는 확실하게 자국의 주장을 펼치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담화를 이야기하고, 이후 일본의 역대 정권은 그 취지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며, ‘아시아 여성기금’을 이야기 한다. 정신대와는 다르다고도 한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1905년 일본 내각의 결정,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승만 라인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북경, 서울에서의 외교관 경험을 살려, 외모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한중일 3국 사람을, 58년 개띠들의 각 나라에서의 살아온 배경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차례 ‘민족의 기억’과 ‘역사’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역사학자 캐롤 글럭 교수 등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생존자들이 있고 그 기억이 교육을 통해 전해지는데, 이를 ‘역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불가역적’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기억’이 아프다.

전체적으로는 저자도 어찌됐든 일본사람인지라 일본에 대한 쓴소리라기보다는 한국에 대한 쓴소리고 일본우호적·우위적 취지가 느껴지지만, 한중일 3국간 관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단지 중국인을 ‘짱개’,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근거 없이 폄하하지 말고, ‘우경화’, ‘역사왜곡’만 일갈할 게 아니라 찬찬히 일독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우리에게는 ‘중국인만 모르는 한국’, ‘일본인만 모르는 한국’을 쓸 한국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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