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덥고 길었던 여름이 가고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한해 농사의 결실을 맺는 계절 가을은 야구의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 가을야구 윤곽이 거의 드러났는데 당초 예상과 많이 다르다. 슈퍼스타들의 이적으로 거의 모두가 꼴찌로 꼽았던 팀이 당당히 선전하여 가을야구를 하게 된 것이다. 반면 큰 투자를 한 두팀은 모두 하위권을 전전하더니 가을야구에 실패하였다. 연봉 총액 최하위, 슈퍼스타가 없는 팀이 선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액을 투자하고도 성적을 내지 못한 팀은 또 왜 그런 것일까.

야구는 팀 스포츠이면서도 개인의 역량에 대한 의존이 큰 경기이다. 투수에 의하여 결과가 좌우되는 것, 한 타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축구에 비하여 훨씬 커(만루홈런과 삼중살) 슈퍼스타 한 사람의 기여가 중요한 스포츠이다. 전문가 개인의 퍼포먼스가 중요한 병원이나 로펌과 어쩌면 가장 유사한 스포츠가 야구가 아닐까. 더구나 연봉 최하위 팀은 변변한 대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다른 팀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것이어서 그 성과가 놀랍다. 과거 역량을 발휘 못하던 선수들을 모아 성과를 만들어낸 것은 무엇일까. 궁금하여 살펴보니 그 팀에서는 선수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슈퍼스타가 빠져나갈 것에 대비하여 그 뒤를 이을 선수들을 오래 전부터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잘 되는 조직의 특징은 내부에서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이고 그 뒤에는 사람을 키우는 리더가 있다. 사람이 성장하는 조직에서 자라는 젊은 선수는 자신의 미래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팀에 충성을 다한다. 선배가 그렇게 성장해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사람이 성장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리더임이 분명한 반면, 어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사람이 남아 있지 않고 조직이 주저앉는다면 그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동방순례는 신비로운 순례길에 나선 여행단의 이야기다. 주인공 레오는 여행단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서번트로서 여행단이 지치고 힘들어 할 때에 노래를 불러 활기를 불어넣는다. 덕분에 여행길은 순조로웠으나 레오가 사라지면서 여행단은 혼란에 빠지고 결국 여행 자체를 포기하고 만다. 서번트 레오가 없이는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화자는 몇년을 방황한 끝에 마침내 레오를 만나고 그 여행단을 후원할 교단을 찾는다. 그때 비로소 레오가 실제로는 그 교단의 리더이자 정신적 지도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착안하여 미국 AT&T 부사장을 역임한 로버트 그린리프는 서번트 리더의 개념을 정립하여 구성원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고 존중, 봉사, 정의, 정직 그리고 공동체 윤리의 다섯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경청하고 설득하여 사람을 성장시키는 리더를 서번트 리더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서번트 리더의 예로 예수, 토마스 제퍼슨, 그룬트비를 들었다.

최근 엘리트 법조인들의 몰락은 슈퍼스타에 대한 지나친 경도가 낳은 결과가 아닌지, 서번트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리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훈련된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서번트 리더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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