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형사절차와 별개로 증거가 명백하고 죄질이 경미한 사건을 신속·간이하게 처리하는 즉결심판 절차가 있다. 전과자 양산을 방지하고 형사재판을 받게 될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경제적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제도이지만 자의적인 법집행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선경찰서에서는 즉결심판 활용에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이에 경찰청은 2015년 3월 23일부터‘경미범죄 심사위원회’제도를 시범운영하면서 형사입건 대상자는 즉결심판 청구로, 즉결심판이나 통고처분 대상자는 훈방으로 처분을 감경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였다.

올해 4월부터 경미범죄 심사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더운 여름 아이스크림을 훔친 치매에 걸린 어르신, 추석을 맞아 만나게 될 손녀를 위해 과자와 음료수를 훔친 할머니 등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하게 되었다. 회의 과정에서는 범죄의 성립 여부나 증거법이 거론될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한 구성원 모두 부담 없이 각자의 경험을 얘기하며 온정을 베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필자는 심사대상이 되었던 사람들 모두에게 원 처분을 감경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심사대상이 되었던 사람은 대부분 어린 학생이거나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이었기에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고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면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실제 경미범죄 심사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남성보다는 여성, 10대·20대 및 70대 이상일수록 원 처분이 감경될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딱한 사정이 있음에도 경찰관에게 불쌍해 보이지 않았던 죄(?)로 무뢰배 취급을 받거나, 물건 훔치는데 망을 봤으니 특수절도에 해당한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심사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경찰서나 검찰청, 법원청사는 여전히 차가운 기운을 뿜고 있지만, 그 청사 안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따뜻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제도가 활성화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의 경험이 법리나 판례를 알아가는 시간보다 값지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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