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전수조사 실시…한명이 대법원 사건 월평균 5.49건 맡기도
“대법원 사건 배당제한 기준에 ‘고교동문’ 포함해 비리 막아야”

대법관 출신 변호사 일부가 대법원 사건을 맡을 때 주심 대법관과 재직기간 또는 출신고교 연고가 있는 사건을 맡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지난달 30일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대법원 사건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현재 변호사로 등록돼 있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 38명이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수임한 대법원 사건 1875건(판결선고된 사건 기준)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변협은 “전관비리 근절을 위해 힘써왔으나 ‘정운호 게이트’ 등 전관비리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에 더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전관 변호사 수임 경향을 분석하게 됐다”고 전했다.

변협은 지난해 9월 대법관 출신 변호사 31명에 “연고관계가 있는 대법원 사건 수임을 자제해 달라”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또 지난 6월에는 전관비리 근절 대책 중 하나로 “검사장급 이상의 검사와 고등법원 부장급 이상 판사의 개업을 금지하고, 판·검사의 정년을 70세로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전수조사 결과 특정 변호사들이 사건을 독점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연도별 대법원 사건 수임 건수순위(상단 좌측표)를 살펴보면, 상위 10명이 5년 8개월간 1316건을 수임했다. 전체 사건의 70.19%다. 특히 이 중 11명은 연도별 대법원 사건 수임 건수 10위 안에 4회 이상 이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많은 사건을 맡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5년 8개월간 대법원 사건 373건을 맡았다. 월평균 5.49건꼴이다. 두 번째로 대법원 사건을 많이 맡은 변호사보다도 2.36배 많은 건수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회 소속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사건 수임 수는 1.69건에 불과하다.

서초동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새롭게 수임하는 사건 수는 한달 평균 1~2건이고 진행 중인 사건 수는 4건 정도 된다”면서 “대법원 사건 수만 월 평균 5건 이상은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대법원 사건을 맡지 않은 전 대법관은 38명 중 6명에 불과하다.

 

고교동문 연고도 다수 드러나

변협은 대법관 출신 38명의 고등학교, 대학교, 연수원, 재직기간을 조사해 현 대법관 14명 및 민일영·이인복 전 대법관과 연고가 있는지 조사했다.

조사 결과,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재직기간이 겹치는 대법관이 주심인 사건을 수임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 사건 수임 건수가 76건인데, 재직기간이 겹치는 현 대법관이 주심인 사건을 34건 맡았다.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다. 또 다른 변호사의 경우에도 수임한 대법원 사건 158건 중 56건이 같은 기간 일했던 대법관이 주심인 사건이었다.

고교동문인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사건을 수임한 비율도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수임 건수 10위 이내의 변호사 중 3명이 고교동문 연고에 의해 사건을 수임해, 연고에 의한 수임비율이 14.47~18.23%에 이른다. 특히 2011년부터 매년 대법원 사건수임건수 10위 안에 든 대법관 출신 변호사 2명은 고교동문 연고에 의한 사건을 각 68건, 23건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직기간과 고교동문, 두 연고관계가 모두 겹치는 대법원 사건을 수임한 경우도 있다. 2015년부터 대법원 사건 수임 건수 상위에 오른 한 변호사의 경우, 1년 8개월 동안 총 58건 중 20건은 같이 근무한 적 있는 현 대법관 사건을, 10건은 고교동문인 현 대법관의 사건을 수임했다.

변협은 “대법원 사건 배당제한(재배당 포함)기준에 고교동문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연고에 의한 비리행위를 막기 위해 지난 8월 1일 배당분부터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상고심 사건을 해당 변호사와 대법원에서 하루라도 같이 근무한 대법관에게 는 배당하지 않도록 했다. 고교동문은 이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지난해 8월부터 변호사가 판사와 고등학교 동문, 대학·대학원 같은 학과 동기, 사법연수원·로스쿨 동기, 법원행정처·재판부 등 같은 부서 근무 등의 연고가 있는 경우에는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하고 있다.

변협은 지난해부터 고위 공직자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못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전 대법관 대부분은 공익활동이나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홍훈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 낙향했다가 1년 후 화우 공익법률센터 이사장으로, 전수안 전 대법관은 홀로 공익활동을 하다가 2014부터는 공익법인 선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김영란, 박시환, 양창수 전 대법관 등은 퇴임 후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창우 협회장은 “이번 전수조사 결과로 인해 연고에 의한 사건 수임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를 위해 전관비리 발생 여지가 있는 부분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전·현직 대법관 모두 비리행위에 동참하지 않고 퇴임한 후에는 공익활동이나 후학양성에 힘써 전관비리가 근본적으로 근절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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