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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미필적 고의
이범준 경향신문 기자  |  nonfictionista@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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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호] 승인 2016.09.26  09: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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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아양, 아첨, 아부의 차이는? 정답) 아양은 법률상 모욕의 반대, 아첨은 진실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반대, 아부는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반대 개념이다.

다시 말해, 아양은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무작정 귀여움을 떠는 것이고, 아첨은 실제 있는 내용으로 상대방을 띄우는 것, 아부는 있지도 않은 얘기로 상대방의 기분을 들썩이는 것이다.

전주혜 서울고법 판사에게 이 얘기를 들은 게 11년 전이다. 법조기자 2년째이던 나는 다행히 명예훼손과 모욕의 구성요건을 알고 있었다. 전 당시 판사는 별다른 사전 설명 없이 세 단어의 차이를 설명해줬는데, 그게 이중의 기쁨이었다. 얘기 자체가 무척 재미있기도 했고, 내가 어느새 범죄의 구성요건을 안다는 쾌감도 있었다. 지금도 이 얘기를 듣던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할 정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법률가들이 만들어둔 의미망이 실재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됐다. 사실 자유, 평등, 정의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사회 개념이 일본에서 번역되고, 식민지를 계기로 조선에 이식된 것이다. 가령 영어 단어 소사이어티(society)를 사회(社會)로 옮긴 게 1870년 후반이다. 수십 년의 실험과 논쟁을 거쳐 후쿠자와 유키치가 제안한 ‘인간교제’가 나왔고, 역시 그가 ‘학문의 권장’에서 사용한 ‘사회’가 자리 잡았다.

소사이어티를 번역하기 힘들었던 것은 일본에는 대응하는 현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양에 존재하지 않던 서양의 현실은 일본의 상상과 토론을 통해, 개인(個人) 근대(近代) 미(美) 연애(戀愛) 존재(存在) 자연(自然) 권리(權利) 등이 됐다. 권력이 작동하여 어휘와 제도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폴리스(police)가 시민권이란 연원을 버리고, 감시하고 살핀다는 경찰(警察)로 재탄생한 일이 대표적이다.

개념은 복잡한 현상을 조작(操作)하는 이점이 있지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보면 현실과 유리될 우려도 크다. 요새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미필적 고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결과의 발생을 확실하게 인식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을 예견하고 용인하는 심리 상태’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의문 때문이라고 한다. 참여재판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형법교과서를 새로 써야할지도 모른다.

아양의 반대말인 모욕이 범죄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당황스러웠다. 법률의 영역은 여전히 근대 이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합헌을 결정했을 때는 더욱 난감했다. 이 모욕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됐다. 개념을 의심하지 못한다면 법률가가 아니다. 좋게 말해도 법 기술자이고, 작심하고 말하자면 수험생 마인드를 못 벗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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