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심판 대리권 부여, 법제 상담 및 자문 업무 등 행정사 업무범위 확대 내용 담겨있어
변협 “변호사제도 근간 흔드는 행정사법 개정안 즉각 철회해야”, 회원 대상 서명운동 실시

행정사에게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행정사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자, 변호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행정사법 개정안은 전관예우로 행정관료 퇴임자를 배불리려는 것”이라면서 행정사법 개정 철회와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행정자치부는 이달 13일 행정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행정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행정사가 기존 업무인 행정심판 서류 작성 외에도 심리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교육 이수자에 한해 법률영역인 행정심판 청구 대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법제 등에 대한 상담 또는 자문을 가능토록 했다.

이외에도 공무원 출신 행정사는 퇴직 전 1년부터 퇴직한 때까지 근무한 기관과 관련한 업무는 수임할 수 없도록 하게 하고, 대한행정사회로 행정사조직을 단일화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변협은 “지금까지 고위직 공무원 출신 행정사들은 전관예우를 받으며 민간과 정부 부처 사이의 로비창구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며 “행정사가 행정심판 대리까지 수행하게 되면 불법 로비와 비리가 판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변협은 행정사의 전문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공무원 경력은 법률영역인 행정심판 업무에 대한 전문성의 근거가 될 수 없으므로, 국민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지식을 갖춘 변호사 대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행정사 업무범위 확대를 통해 변호사보다 적은 비용으로 국민이 행정심판, 인·허가 등을 더욱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변협은 “로스쿨 제도를 통해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변호사가 연간 1500명씩 배출되고 있다”며 “행정심판 영역에서도 국민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능력 있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운운하는 행정자치부의 주장은 술책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변협은 “행정사는 변호사가 부족하던 시대에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한시적 성격의 제도로, 오히려 폐지돼야 한다”며 “이들에게 업무영역을 확대해 행정심판 대리권까지 부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인 발상이며, 수십만명의 퇴직공무원에게 변호사 자격증을 공짜로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행정사 자격시험은 지난 2013년 도입됐으며, 현재 경력 10년 이상 공무원은 행정사 시험에서 1차시험과 2차 시험 과목 일부가 면제된다.

이렇게 시험을 면제받은 공무원이 행정사 전체의 99%를 차지하고, 20만명이 넘는 행정사 중 비공무원 출신 합격자는 956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사는 국민이 아니라 시험 특혜를 받은 공무원들의 기득권 지키기 장치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변협은 “현직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번 개정안을 고위직 퇴직자들의 밥그릇을 챙겨주기 위해, 자신의 퇴임 후 돈벌이를 위해 들고 나온 것이라면 이는 자기 자신과 이해집단만을 위해 국민 전체를 도외시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라며 “대통령과 국회는 하루속히 무너진 공무원 기강을 바로 잡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자치부는 변호사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을 우롱하는 행정사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전관예우로 행정관료 퇴임자를 배불리려는 작태를 보인 홍윤식 행정자치부장관은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덧붙였다.

 

변호사들 반발 “개정안 저지해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의 1인시위 등 이번 개정안에 대한 변호사들의 반발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거세다. 위 개정안으로 변호사들은 변리사·세무사 등 다른 유사직역뿐만 아니라 행정사와도 업무영역을 다퉈야 하는 상황이 됐다.

변호사들은 “행정심판 업무영역은 전문적인 분야로서 행정소송법, 행정심판법, 행정법 등에 대한 유기적인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행정심판 절차를 대리하는 업무는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해야 한다”, “행정사가 상담, 자문뿐만 아니라 행정심판 대리 업무까지 한다면 변호사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등 개정안 반대에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의 A변호사는 “로스쿨 체제로 다수 변호사가 양성되고, 다양한 직역으로 진출하는 변호사가 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행정심판 대리는 변호사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며 “국민을 위해 행정사에게 행정심판 대리권을 허용한다는 것은 공무원의 ‘제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허울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19일 행정사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정리한 법률안 검토 의견서를 행정자치부에 전달했다.

한국법조인협회 또한 같은날 성명을 내고 전관예우와 ‘행피아 도래’에 우려를 표했다.

하창우 협회장은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행정사가 변호사 업무까지 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전국 회원을 상대로 행정사법 개정안 철회 및 행정자치부장관 퇴진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관비리 근절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위 개정안은 시대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국민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개정안 저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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