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전화번호부에 입력된 전화번호가 학교 다닐 때보다 몇 배 늘었다. 협소하고 까다로운 인간관계를 자랑하던 필자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하루에도 만나는 사람이 수명이고, 그들 대부분은 처음 악수를 나누는 사람이다.

첫 인상을 과신하여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일을 하다 보니 ‘반추’하는 일이 늘어난다. 말하자면 사건의 결과에 따라서 처음 사건을 의뢰하러 온 의뢰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대비(?)를 하게 된다.

연애도 중요하지만 이별도 중요하다. 연애 고수 선배가 했던 말이다. ‘아름다운 이별’이란다. 형용모순이지만 지나고 보니 옳은 말이다. 제 아무리 열렬해도 연인들은 두 사람만의 일뿐만 아니라 세상의 방해로도 어쩔 수 없이 헤어지기 마련이다. 근사한 악수와 포옹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로가 한 방향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아름다운 이별’은 고사하고 ‘고·노·도’ 사건만 안되어도 다행인 것이 현실이다.

3년차 변호사가 함부로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보통 10명의 의뢰인이 있다면 사건이 종결될 시점에서 변호사와의 관계는 대충 이런 것 같다. 승소와 패소의 비율을 5대 5라고 가정하면, 당연히 패소한 5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드물게 5명 가운데 1명 정도는 결과와 무관하게 그 동안 노력한 변호사에게 감사를 표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승소한 5명과의 관계가 무작정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3명 정도는 그 때부터 성공보수를 주기 싫어하는 내색을 보인다. 그들 가운데 성공보수를 떼먹는 경우도 있다. 결국 10명 가운데 2~3명과의 관계가 좋은 인연으로 남고 나아가다른 의뢰인을 소개시켜주는 ‘아름다운 이별’이 된다.

연애 고수 선배는 말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는 너무 깊게 빠져들지 마.” 처음 상담을 하러 온 의뢰인의 첫 인상을 살피게 되는 것은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물끄러미 보다가 ‘좋은 친구’로 남은 사람들을 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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