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유학 가서 저작권법을 공부할 때다. 사전 지식이 부족한데다가 영문으로 된 교재와 판례를 공부하자니 처음에는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미국저작권법 교재를 번역한 책을 보고 큰 도움을 받았다. 대구지방법원 판사들이 비교법연구를 하면서 미국저작권법 교재를 번역한 책이었다. 먼저 번역된 내용을 읽고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니까 영문 교재나 미국 판례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 덕을 톡톡히 보아서인지 유학 기간 중에 공부한 미국 판례를 번역해서 자료로 남기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는 저작권에 관련된 판례가 많지 않았고 미국 판례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이라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짧은 지식과 우리말 실력 부족으로 꽤 고생했지만 번역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받은 도움을 갚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판례 번역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연방대법원 판례도 번역해 보았다. 틈틈이 번역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동기부여를 하였는데 법률분야에는 생각보다 번역서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찍이 김용옥 선생은 칸트의 사상에 관해 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썼더라도 칸트의 저서가 번역되지 않는 한 그 논문의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속에 뿌리내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어 저서를 원문으로 읽을 수 없는 사람은 논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토론도 불가능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번역이 중시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유독 번역을 경시하는 학계풍토는 표절혐의를 회피하고 정보를 독점하려는 엘리트주의의 산물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하였다.

백성들이 편리하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음에도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오랫동안 무시해 온 것도 마찬가지겠다. 다산 정약용이 당대의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절실한 마음으로 훌륭한 정책방안을 남겼다 하더라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문으로 쓴 책이 얼마나 쓸모 있었을까 싶다. 정보의 대중화·민주화를 위해서도 번역이 필수적이다.

번역의 중요성에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번역을 잘 하려면 독해력과 우리말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국 판례에 나오는 사건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어서 배경지식이 없으면 정확한 의미전달이 힘들 때도 있다. 전문분야의 지식없이 언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사건내용과 법리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독자들이 알기 쉽게, 또는 빈틈없이 번역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책도 두루 보아야겠지만 아마추어 번역가인 나로서는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원문의 내용을 우리말로 정확히 옮기지 못해 고민스럽기 일쑤였다. 딱 맞는 낱말을 찾지 못하거나 번역한 문장이 우리글 다운 지도 고민하게 된다. 오역의 두려움은 늘 따라다니지만 잘못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를 갖겠다는 마음으로 대처하였다.

어려운 만큼 보상도 따른다. 읽을 때는 판례의 요지만 파악해도 되지만 번역을 하면서는 전체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니까 아무래도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진다. 우리말의 낱말과 문장을 올바르게 쓰려고 노력할수록 글쓰기 실력이 좋아진다. 요즘 전문분야를 공부하려는 젊은 법조인들이 늘고 있다. 논문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논문에서 인용한 외국의 판례나 전문서적을 번역하면 전문성을 넓히고 법률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뜻 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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