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긴 싫지만, 사건을 진행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뭘 잘못했나’와 ‘어떻게 하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의뢰인께 잘 설명할 수 있을까’이다. 내 잘못일 수도 있고,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변명을 하다가는 그나마 있던 신뢰마저 남아나지 않을 수 있기에 비난의 화살을 피하면서도 상황을 잘 풀어가야 한다.

그렇게 묘수를 생각해보는데, 사실 시시비비와 무관하게 언제나 시작은 정해져 있다. 죄송하다고 하는 것이다. 간혹 그걸 대체 어떻게 알고 대비하나 하는 억울함이 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을 대리인의 불찰로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로 운을 떼면, 감정이 쉬이 가라앉지는 않더라도 신뢰는 남고, 잘잘못에 대한 비난은 수그러든다. 그리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신경 쓰겠다고 고개를 숙임으로써 그 상황은 봉합된다.

언제부터인가 죄송하다는 말이 너무나 인색한 세상이 됐다. 웬만한 인재(人災)는 무덤덤할 정도로 사건사고와 물의가 끊이질 않는데, 어찌된 일인지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다. 죄송하다는 말의 뜻에는 잘못이나 죄를 인정하는 의미도 있지만, 면목이 없다거나 안타깝다거나 위로를 건넨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전자의 의미로만 받아들여 질 것이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죄송할 일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것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 정부에서는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 듣기가 참 어렵다. 이제는 아무도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 더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늘 허둥대고 실력이 부족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내 경우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상황을 관리하거나 누군가를 대표하는 사람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때로는 좀 더 믿고 기다려보자는 관용이 싹트기도 하고, 너도 힘들었겠구나 하는 위로와 공감이 싹트기도 한다. 잘나도, 잘못이 없어도, 죄송하다는 말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 꼬투리 잡겠다는 게 아니다. 마음을 좀 어루만져 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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