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영국 로스쿨 졸업생들이 변호사 임명을 전담하는 런던의 4개 법학원(the inns of court)을 점거했다. 전문직 역사상 보기 힘든 정치행동이었다. 신참 변호사들의 일자리 부족에 대한 항의시위였다. 당시 한 졸업생이 일간 ‘가디언’기자의 블로그에 ‘OccupyTheInns’라는 필명으로 남긴 글.

“누구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BPTC [영국법정변호사(barrister)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하는 전문 과정] 와 LPC [영국사무변호사(solicitor)가 되는 법률실무코스] 졸업자들은 직장을 구할 수가 없거나, 적어도 변호사다운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운이 좋은 졸업생들은 법률보조인이라도 되지만, 운이 나쁜 졸업생들은 바(bars)에서 일한다(the bar말고).”

미국변호사협회는 2010년 기준,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120만명이며, 그 중 4분의 3 정도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변호사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우선 로스쿨 지원자들이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미국로스쿨 입학위원회는 2014년에는 2년전보다 로스쿨 지원자 수가 30퍼센트 가까이 줄어들어 1977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발표했다. 변호사들의 경제적 현실이 또 하나의 증거다. 로스쿨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많게는 15만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사회에 나오는데, 2014년 현재 졸업생 초봉은 그 전 두 해보다 17퍼센트 줄어든 6만달러에 불과하다. 그래도 직장을 구한 졸업생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2009년에는 로스쿨 졸업생 중 무려 35퍼센트가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세계의 법률 시장을 지배하는 영미권 법률시장이 이미 이렇다.

19세기 중반, 몰락하던 러시아 지식인 사회에 두권의 책이 있었다. 한권은 1846년 출간된 알렉산드로 게르첸의 ‘누구의 죄인가?’, 다른 한권은 1862년 출간된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법률가 양성시스템을, 법률가 채용시장을, 법률시장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이 때, 짧은 글에서 성찰해야 할 주제는 소설의 제목이 일정부분 시사해준다.

첫째,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미국 로스쿨의 자그마한 대응. 스탠퍼드대학교에는 ‘법정보과학’이라는 신생학문이 있다. 강의는 로스쿨과 컴퓨터 공학 교수들의 협동 강좌다. 강의계획서의 한 대목. “자판기에서 카푸치노를 빼서 마시듯 상황에 적절한 법률 정보를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변호사들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이 수업을 들으면 5년 후 변호사의 직업이 어떻게 바뀔지를 예견할 수 있다(제리 카플란, ‘인간은 필요 없다’, 한스미디어, 2015).”

이번엔 한 미국 변호사의 대응. ‘로봇, 로봇 앤 황’이라는 법률 사무소가 있다. 장난일까? 아니다. 실제다. 팀 황(Tim Hwang)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UC 버클리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다. 황 변호사가 웹사이트에 소개한 내용은 이렇다. “저희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해지기 쉬운 법률 분야에 과학 기술, 스타트업,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를 접목시키고자 합니다.”

둘째, 도대체 누구의 탓인가? 누구의 책임인가? 책임은 현상으로, 현상은 원인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변화는 혁신을 넘어 이미 혁명적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의 결합이 법률시장에 던지는 충격은 만만치 않다.

“변호사는 지루해지고, 변호사는 골치 아프게 느끼지만, 컴퓨터는 그렇지 않아요.” 다국적 화학회사의 사내 변호사인 빌 헤어(Bill Herr)의 말이다. “이는 변호사 채용 관점에서 볼 때, 문서를 검토하는 일을 수행하는데 배정되었던 많은 이들에게 더 이상 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리콘 밸리의 문서전자검색 회사인 ‘클리어웰(Clearwell)’은 서면을 분석하여 세부적인 키워드가 아닌 전체적인 ‘콘셉트’를 찾아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이는 소송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준다. 이 소프트웨어는 로펌인 ‘디엘에이 파이퍼(DLA Piper)’에서 법정 기간내인 일주일 동안 여러 페이지로 이뤄진 57만개의 증거서류를 분석하는데 투입됐다.

소프트웨어는 언어분석틀을 사용하고 서류 안에서 찾아낸 전체적인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해 예전에는 수 백명의 변호사가 했던 일을 처리해낸다. 이 뿐 아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용한 이른바 정량적 법률 예측(Quantitative Legal Prediction, QLP)시스템도 보급되고 있다(폴 로버츠, ‘근시사회’, 민음사, 2015) .변호사들은 보통 과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예측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련한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실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수십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람이 보여주는 법원 판결에 대한 예측력은 59%정도다. 하지만 현재의 컴퓨터 수준으로도 법원 판결의 75%를 예측할 수 있다. 이렇듯 IT와 인공지능의 발전이 법률시장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다. 충격은 채용시장이 더 민감하다. 법률문서전자검색 회사인 ‘오토노미’의 설립자인 마이크 린츠는 “미래에 법률시장은 소수의 사람만을 채용하는 혹은 더 이상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 분야가 될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어느 법률가가 이런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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