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하나

인사과에 가서 담당 중사에게 물었다. “왜, 우리 중대 민호가 뽑히지 않았습니까?” 군 생활 당시 우리 부대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병사 한명을 선정하여, 재정적 후원을 해주기로 했다. 어느 독지가가 연대장님에게 이런 취지로 성금을 기탁했고, 병사들은 모르게 절차가 진행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추천한 중대원 민호(가명)의 부모님은 보행에 장애가 있으신 분들로, 변변한 상점도 없이 시장에서 노점을 하고 계셨다. 지독한 가난 탓에 민호는 병사들에게는 금싸라기 같은 휴가 기간에도, 작업을 열외 받은 채 부대에 머물곤 했다. 당시 중대원들 중 고참이었던 민호가 중대장인 나에게 가정 사정을 일일이 말하진 않았지만, 신병 훈련소에서 군기가 바짝 들어 빼곡히 적은 생활기록부를 통해 힘겨운 형편을 소상하게 알 수 있었다. 난 이런 민호가 당연히 후원받을 병사로 뽑힐 줄 알아 이의를 제기했고, 담당 중사는 탈락한 다른 병사들의 서류를 보여주었다. 서류는 민호보다 더한 상처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각양각색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땅을 살아가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삶이 이렇게 힘겨울 수 있구나.’ 선정 결과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덧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때의 경험은 화상처럼 뇌리에 남았다.

# 기억 둘

십수년 전 텔레비전에서 본 폐광 예정인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광부의 인터뷰 중 한 장면이다. 탄가루를 시꺼멓게 뒤집어 쓴 광부가 말했다. “저는 부모 없이 자랐어요. 여태 여기서 번 돈으로 논밭을 장만했어요. 거기서 농사를 지어 먹으면, 평생 굶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에요.” 그 광부에게 논밭은 자기가 먹을 것을 키우는 밥상이었다. 농부가 될 광부의 말을 들으며 나도 그 논밭에서 자란 쌀과 무, 고추를 그와 함께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위의 두 기억들이 떠오른다. 힘겨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더 못한 환경에서 생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는 느낌이다. 힘이 되는 기억 못지않게 힘이 되는 사람도 있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인세 수입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평생을 가난하게 산 그는 10억원이 든 통장을 아이들을 위해 남기고 갔다. 인생은 고해(苦海)다. 하지만 거센 풍랑에 함께 맞서는 이들이 있어 그 바다는 항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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