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의 국내 이주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이래 국내 거주 탈북민은 약 3만명에 달하고 있다. 20년간 매년 약 1500명의 탈북민이 이주해온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주영 공사를 비롯하여 북한 엘리트층의 이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의사 출신 탈북민의 사고 사망 기사가 있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하다가 탈북하여 병든 아내를 위하여 공사장에서 막노동했고 6년전부터 인천의 건물관리 용역업체에 취직하여 주차관리와 청소 등 의 일을 해 왔는데, 빌딩 2층에서 실내 유리창을 닦다가 추락해 숨진 것이다. 북한의 의사가 국내에서 막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은 전혀 다른 체제에서 평생 살아온 탈북민들에게 우리 사회 적응과 정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탈북민은 3만명도 채 되지 않는 적은 수이지만 2400만 북한 주민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통하여 우리 사회는 분단 장벽 저 너머에 있는 북한을 경험하고 이들과 같이 살면서 60년이 넘는 분단으로 남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이질화되어가고 있는지 알아가고 있다.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는 바로 장래 있을 남북간 통합된 사회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15년 전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에 관여한 것을 시작으로 주로 교육과 취업에 관여해왔다.

탈북민을 통하여 삶으로 북한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말투와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찾아온 북한이다. 이들을 만나며 남과 북이 많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짧은 시간에 쉽게 극복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체감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수천년 역사를 같이 한 동질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치동에 뒤지지 않는 탈북민 학부모의 교육열은 문화적, 정서적으로 같은 DNA가 있음을 실감하게 하였다. 탈북민은 우리 사회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남과 북의 사람들이 같이 사는 삶의 통일에서 핵심과제가 교육과 취업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탈북청소년 교육은 북한 학생 수백만의 교육을 준비하는 것이고 탈북민 취업지원은 북한 주민 2000만의 실업문제에 대한 대안을 준비하는 것인데, 정부의 지원체계는 많이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취업부분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는 취업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고용부는 얼마 되지 않는 탈북민에 대한 우선순위가 없다. 궁극적으로 통일은 지난하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탈북민은 가르쳐 준다.

이들과 같이 사는 것이 작은 통일이라면 이 작은 통일을 성공시킴으로써 큰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탈북민은 통일을 준비하라고 주신 선물이다. 너무 잘 모르는 남과 북이 만나 오해와 편견 속에 혼란과 불행으로 귀결되는 통일을 피하려면 우리에게 온 작은 통일을 잘 만들어갈 책임이 있다.

청진 출신 탈북민 의사는 일기에서 이 사회의 꿈과 좌절에 대하여 적었다.

‘편법이 용납되는 결과주의와 일등주의 세상의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싶다. 사람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씁쓸한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원칙을 지켜나가며 사는 그런 삶도 아름답다. 성공이라는 봉우리를 향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 길만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며 그리운 혈육과 상봉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에…’.

이 간절한 꿈이 현실이 되도록 성원하는 것이 통일을 만들어 가는 작은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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