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를 부는 자에게 돈을 낸 손님은 곡목을 청할 권리가 있다(He who pays the piper calls the tune).”

잘 알려진 서양의 격언이다. 지난 4년간의 정계를 들여다 본 국민들은, 선거를 맞아 꼼꼼히 후보자의 의견을 들어주고 후보자에게 관심을 가졌으며 후보자에게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다. 후보자는 국민의 대표로서 하나의 헌법기관이 됐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에게 거는 기대가 뚜렷하다. 자신들을 위해 일해 달라는 것일 게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모든 사람이 대표가 될 수 없는 이상, 자신의 뜻을 가장 왜곡 없이 표현해 주길 바라는 것은 모두의 마음일 테다.

제19대 국회(2012~2016년)는 여러 오명을 썼다. 여대야소의 판세로 시작하여 대선정국 정쟁, 장외투쟁, 정당분열, 위헌정당해산, 공천파동의 레퍼토리가 펼쳐졌다. 제19대 국회에서 국가 예산은 커졌고 가장 많은 법안이 논의되었지만, 국가의 정책들이 지연되었고 수많은 (회의) 파행과 (안건) 폐기가 있었다. 국민은 현명하다. 국민은 ‘일 안하는 국회’라고 낙인을 찍었다.

또한 국민은 정의감과 균형감이 있다. 국민은 자신이 관련된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만을 보지 않고 전체를 지향하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힘(권력)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아준다. 제20대 국회에 ‘국민 모두의 행복’과 ‘비정상의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의 뜻은 무척이나 간결하면서도 지고(至高)한 가치다.

이제 현명한 국민, 정의로운 국민, 균형감각 있는 국민이 바라는 것은 ‘성실하게 일하는 국회’다. 한분, 한분의 고객은 곡목을 청하고 있다. 피리 부는 사람은 그 곡목을 받들어 성실히 연주해서 많은 사람의 정신(精神)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종종 민주주의에선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본래 민주주의는 최선의 결과(적합한 효율)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선의 합의(수용가능한 만족)를 희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행정부는 손발을 움직여야 하고(전문적이어야 하고), 사법부는 제대로 보아야 하며(공정해야 하며), 입법부는 세상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민주적이어야 한다).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단지 국회가 민주적인 것에 머무르면 안 된다.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나 중우정치의 정쟁을 극복하면서 지고(至高)·지선(至善)한 가치를 실현해야하기 때문이다.

글래드스턴과 함께 의회민주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디즈레일리 수상은 “우리가 스스로 행운과 불운을 만든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운명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운명의 결과는 국민들이 냉엄하게 심판한다. 우리 국회도 정책과 법률의 양끝을 끌어당기며 충심으로 ‘일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희망, 바로 ‘행운’이라는 미지(未知)의 운명을 향해서 그 누군가는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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