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하면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광판이 즐비한 타임스스퀘어, 노을이 아름다운 브루클린 다리, 도심 속 푸른 공원 센트럴파크,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도로 위를 가득 메운 노란 택시, 세계 각국의 음식들과 아기자기 예쁜 컵케익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에게 과거 일주일간의 뉴욕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라고 하겠다.

앤디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현대미술 작품과 고흐, 피카소, 모네, 마티스 등 근대미술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앙리 루소(1844년~1910년)를 만났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꽃과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밀림, 밀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소파와 벌거벗은 여인을 함께 놓은 그의 1910년작 ‘꿈’. 뚜렷한 윤곽, 강렬한 색감에 풍부한 상상력이 덧대어진 그의 작품은 환상적이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파리 세관의 세관원으로 근무하면서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은 원근법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화풍과 전혀 다른 그의 그림을 보고 혹평을 가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수많은 혹평 속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고,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그는 “나와 피카소만이 당대 최고의 화가이다”라든가 “나를 감옥에 가둔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예술계이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이 얼마나 근거없는 자신감이란 말인가.

그는 이국적인 식물과 동물이 가득한 밀림을 주로 그렸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아프리카나 남미 출신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서 태어나 단 한번도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밀림을 묘사하기 위해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과 식물원, 동물원을 수없이 방문하고 식물도감 등을 참고하여 그림을 그렸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가 노란색을 잘 사용하였다면, 앙리 루소 그는 녹색을 가장 많이, 그리고 잘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그는 종국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고, 현재에는 독특한 화풍의 위대한 화가로 남았다.

‘게으른 예술가가 만든 명작은 없다’라는 명언이 있다. 다이어트나 금연같은 개인적인 것부터 학업 또는 직업적인 것까지 우리가 목적한 바를 이루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끈기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굳은 믿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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