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국민은 수없이 많은 국가의 작위 속에서 생활을 영위한다. 그에 못지않게 어떤 ‘부작위’ 즉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행(幸), 불행(不幸)에 놓이는 경우도 많다. 다시 말하면 근대법치국가에서는 적극적인 국가공권력행사로 기본권이 침해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대의 복리 국가에서는 소극적인 국가의 부작위가 국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오늘날은 국가 기능이 적극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갑의 지위를 갖는 자’들이 정의(正義)를 이탈한 ‘지위’남용을 국가가 방치하는 부작위는 국가가 ‘정의 실현’을 외면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국가의 각종 부작위는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여기서는 특히 ‘부작위와 손해 배상’에 관하여 생각해 본다. 우선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하여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경영하다가 부실화된 경우다. 이런 ‘분식회계’를 걸러내고, 방지하는 직·간접의 2~3개장치가 국가 기구로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구들이 고의적이나 과실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 기업에 투자를 한 국민이 피해를 본 경우, 국가의 부작위로 인한 손해배상이 문제된다. 과거 은행과 기업들이 수없이 부정을 저질러 그로 인한 국민의 피해 배상이 문제될 때마다 상당 인간관계의, 불충분, 고의 또는 과실의 인정의 어려움을 들어 국민의 피해를 외면하기 일쑤였다.

사실 은행과 기업들의 재량·정책의 남용은 심각함에도 그것은 합리적 정책·재량의 범위에 속하는 사항으로 둔갑하여 국가내지 국민의 피해가 된 경우가 많다. 지금 해운업과 같이 일부 ‘분식회계’라는 부정도 있었으나, 세계해운업의 불황을 못 이겨 도산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정책과 재량이 인정되는 분야에서 치밀한 예측을 못하여 불황에 빠지고, 근로자나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은 감독기관도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는 보건 복지부 및 그 산하기관 , 환경부, 통상 산업부의 ‘합동부작위’로 작출 해낸 국민의 피해로 본다. 몇 개의 병원이 환자를 보고해 왔을 때, 관계 부처는 보다 긴장하여 주도면밀하게 조사하고, 원인 규명에 나섰어야 한다. 질병의 원인 판단은 정책·재량 문제가 아니다. 계속 발생하고, 원인 규명이 정확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대처는 미흡했고, 그 ‘부작위’는 최소한 과실이었다. 유·무에 관한 기속적 판단의 문제를 무슨 ‘혹은 (or)’의 문제로 오해했다면 그것은 ‘고의에 가까운 과실’이다. 대통령 및 정치인들이 자고 깨면 ‘민생정치’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무색케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과실이고, 부처 간의 협조가 미흡했다면 그것도 과실이다. 과거 다른 정권하에서 결정되었다는 변명을 하는 자가 있던데, 그것은 ‘국가의 계속성’을 무시한 있을 수 없는 견해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같은 것은 ‘정책의 실수’가 아니라, ‘기속적 판단의 오류’로서 과실이 분명히 인정된다. 조속히 사망자에 대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당국이 피해 전보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주마가편(走馬加鞭)’이 될지 모르나, 보다 실질적이고 신속한 구제책이 마련되기 바란다. 흔히들 우리의 ‘질병예방체계’는 우수하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여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혹시나 이번일이 3~4개 부처에 관련된 사안이라 상호 협조가 잘 안되어 발생한 면이 있다면, 긴밀히 협조하는 창구가 마련되고, ‘공동예산’도 편성하는 것을 검토 하여야 한다. 차제에 ‘국가 부작위에 의한 손해배상’이 이론상·실제상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 급부행정이 강화된 적극적 복리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각 부처의 장이 산하 공무원들을 매우 적극적 자세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대통령 혼자 발버둥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과거에서부터 수없이 문제되어 온 국가의 부작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재검토해야 하고, 특히 법조실무계에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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