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변호사들의 고액 수임료가 TV 메인뉴스로 나왔다. 어느 변호사는 수임료로 20억원에 옵션으로 30억원을 얹어서 50억원을 받았다하고 다른 높은 전관은 수임료 몇억원씩을 받아 알뜰히 모아 시세가 100억원쯤 되는 오피스텔 123채를 샀다고 한다. 보통 변호사라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단박에 벌었다가 법조인생에서 쌓은 명예를 한방에 잃었다.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소유하는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느 구름에 천둥 번개가 숨어있는지 모른다고 내 사건 중 고액 수임료로 문제가 될 사건은 없는지 점검을 했다. 소가가 20억원이 넘는데도 다른데서는 몇 백만원에도 해 준다면서 부른 돈을 반 토막 내어 내 나름 ‘큰 거 한장(1000만원)’에 ‘콜’ 했던 사건이 있는 정도였다. 고액수임료는 그 값을 한다. ‘돈’ 속에는 ‘낚시바늘’도 함께 있다. 세상이 그리 어수룩하지 않아 돈을 받는 순간 ‘낚시바늘’도 동시에 물어 입천장이 꿰여 끌려간다.

오래된 일이다. 학교 선배가 장관으로 재직할 때 형사사건 의뢰를 받았다. 지방 중견 건설회사 회장의 업무상 횡령사건이었다. 사건이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다가 내게 차례가 왔다. 현직 장관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했다. 소개한 고향친구 말로는 장관만이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라 했다. ‘장관님만 해결하는 그런 사건도 있구나.’ 회장인 오너가 이미 횡령죄로 처벌 받아 실형을 살았는데 추가 제보가 있어 검찰에서 내사중인 사건이었다. 수임료로 쉼표가 세개나 되는 액수의 ‘아주 아주 큰 거’ 한장에 무혐의가 되면 회사가 짓는 해운대 앞 전망 좋은 대형 아파트를 추가로 제시했다. 마음이 들뜨면서 흔들렸다. 선배가 내게 준 인간적 신뢰와 돈 사이에서 고민했다. ‘아, 이 돈이면…’ 며칠을 끙끙대다 포기했다. 꼭 낚시바늘을 삼킬 것 같았다. 후에 그 회장은 구속이 되었다고 했다. 고액수임료 속에 숨은 낚시바늘에 꿰여 입천장이 딸려갈 뻔한 사건이었다.

사법시험 합격 후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시험 강의를 했다. 수험생활을 오래 해 나름 어떻게 하면 바로 떨어지는지 불합격 노하우는 있었다. 내가 체험한 ‘낙방 비결’을 듣고도 수강생들 반응이 미지근했다. 확 와 닿게 다시 ‘돈’으로 처방도 해 봤다. “여러분, 변호사 자격증이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요? 내가 들어보니 시세로 20~30억원은 된다고 해요. 운 좋으면 한건에 그 정도 돈도 벌 수 있대요. 눈앞에 당장 이런 돈이 생긴다면 죽어라 공부 해야되지 않습니까?”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후끈했다. 그 때 20년쯤 후의 ‘전관 변호사 고액 수임료’를 용하게 맞췄다.

변호사 개업 첫달 수입이 꽤 좋았다. 생활비 빼고 남은 돈이 1000만원 쯤 되었다. 만져본 가장 큰 돈이었다. 돈에 대한 갈증을 원 없이 풀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 수표와 현금으로 1000만원을 지갑에 넣었다. 인심하고 배짱은 지갑에서 난다던가. 아랫배가 든든하고 어깨도 힘이 주어졌다. 어디에 쓸지는 정하지 않았다. 강남역 근처를 쏘다녔다. 시간이 넉넉해 2000원 주고 영화 한편을 보았다. 커피숍에서 제일 비싼 커피도 마셨다. 3월의 오후는 아직도 쌀쌀했다. 시장기를 느껴 값비싼 식당을 찾아보았다. 중식당 일식당 한식집 몇곳을 둘러보았지만 비싼 식당에 혼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포장마차에 갔다. 꼬치구이 몇개와 우동, 어묵 한사발을시켰다. 배가 부르니 사바세계에서 열반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묵언수행 스님처럼 ‘물욕’도 사라졌다.

돌아다니다 비싸 보이는 옷 가게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허름한 옷을 입었다고 우등상 대표가 바뀌는 일도 겪었고 중학교 입학식때 입은 교복을 졸업 때까지 입고 다녔다. 옷차림 때문에 당했던 일이 생각나 신사복 정장 두벌을 사니 30만원쯤 나왔다. 아직 못 쓴 돈이 지갑에 가득했다. 이 돈 언제 다 쓰나? 고급 술집도 생각도 해 봤지만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라 큰 용기가 필요했고 관심 밖이었다. 돈 쓸 곳을 모르니 쓸 데가 없었다. 밤늦도록 거리를 배회했다. 자정이 가까웠다. 결국 돈 쓰기를 포기하고 집에 가야 했다. 마트에 들러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장난감을 사고 캔 맥주와 소금구이 통닭 한 마리도 샀다. 자다가 깬 아내는 말짱한 얼굴로 밤늦게 들어오는 나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자는 아이를 깨워 과자와 장난감을 안겨주니 두살 아들은 방긋 웃는다. “왠 닭이에요?” “그냥, 먹고 싶어서.” 더 이상 말을 안했다. 싼값에 산 닭과 맥주 맛이 유달리 좋았다. 남은 돈을 아내에게 주었다. “무슨 돈이에요?” “당신 돈 때문에 마음 고생 많았는데 나쁜 돈 아니니까 쓰고 싶은 데 맘대로 써요.” 아내는 “아휴, 뭘” 하면서 받았다. 며칠 후 아내가 내 와이셔츠 몇벌하고 아들 옷을 사고 나니 쓸데가 별로 없다고 하면서 돌려주었다. 아내도 돈을 써 보지 못했으니 쓰지도 못했다. 그날 내가 쓴 돈을 계산해 보니 34만원 정도였다. 뭔지 모르게 허전했고 공허함이 밀려 왔다. 그러면서 가슴 한 켠 쌓였던 돈에 대한 갈증도 풀렸다. 돈은 벌기도 힘들지만 돈 쓰기도 쉽지 않았다. 쓸데가 없는 돈은 때로는 쓸모없는 돈이 될 수도 있었다.

‘고액수임료’ 사건이 터진 후 아들에게 말했다. “난 수억원, 수십억원 받지도 못해. 그러니 미안하지만 너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다.” 아들의 대답이 묵직하게 들어왔다. “아버지, 돈은 안 물려 주셔도 됩니다. 그 대신 ‘존경심과 자부심’을 물려주시면 됩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존경심과 자부심이라.’ 속으로 뜨끔했다. 돈(수임료)으로 더불어 내 삶이 정당할 자신이 있을까. 차라리 돈이 나을 듯 싶었다. 혼자말로 웅얼거렸다. ‘아들아, 요즘 같아선 그것도 장담 못하겠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