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휴대전화를 바꿔 드렸습니다. 언젠가 “요즘은 노인들도 다 스마트폰인가 뭔가를 쓰고 있더라”고 말씀하신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짬을 내어 가까운 대리점에서 스마트폰을 하나 구입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쓰시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가 많지 않아 하나하나 옮기다가 ‘엄마’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보았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엄마 본인번호를 왜 저장을 해 놓았을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그거 할머니 전화번호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에게도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데 생각을 못하였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군 복무 시절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셨을 때의 일도 생각납니다. 두 시간이라는 짧은 면회 시간을 마치고 경례를 하고 뒤돌아서려는데 어머니께서 “너 군 생활 대신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저는 차라리 사법시험을 다시 보라면 보겠지만 군 생활은 죽어도 다시 못하겠는데 어머니는 자식 대신 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하십니다.

언젠가부터 많은 것에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 대해 익숙해진 나머지 늘 내 옆에 있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일에 있어서도 익숙해진 것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수임료의 다과보다는 사건의 수임 자체를 기뻐하고, 서면 한번 내기 위해 적어도 7~8회쯤은 수정을 반복하고, 어쩌다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면 사선 못지않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경력도 일천한 주제에 언젠가부터 국선 사건에서 적당히 하려고 한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적당히 서면을 써서 제출한다거나, 사건 자체보다는 수임료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처음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진 사람과 일들에 대하여 예의를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물론 익숙해진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전히 긴장은 되지만 재판에 들어가는 것이 예전만큼 떨리지는 않고, 이제는 다른 재판을 구경하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법정에서 판사님께 꾸중을 듣거나 피의자 변호인으로 조사에 참여한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비슷한 취급을 받을 때면 심장이 벌렁거려 잠도 못잘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있으면 할 말은 바로 하는 정도는 됩니다.

앞으로도 익숙해지는 것이 많아질텐데 좋은 익숙함은 살리고 나쁜 익숙함은 빨리 버리도록 해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