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변호사, 회계사 등 비금융 전문직에게도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는 2016년 7월 7일 ‘국가 자금세탁 위험 평가’ 공청회에 참석한 금융위원장의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금융위원장은 소위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해서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귀금속상, 부동산중개업자 등 비금융전문직에게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국제기준 이행 평가에 대비한 과제의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지속적으로 의뢰인이 변호사와 업무상 의사교환을 한 내용은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비밀 보호를 위한 제도연구’라는 책도 집필한 바 있다. 대법원은 명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영·미법상 인정되는 소위 ‘변호사-의뢰인 비밀보호 제도(Attorney-Client Privilege· ACP)’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김창석 현 대법관의 재판부)에서 인정해서 보낸 사건에서 이렇게 판단한 것은 정말 아쉽다.

필자가 이제 입법적으로라도 우리법의 일부로 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2가지이다.

우선 이 권리가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서 변호사는 국민을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유일한 지위에 있다. 이 변호사에게 하는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면 의뢰인이 어떻게 변호사를 신뢰할 수 있으며 신뢰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보호를 논의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미국은 ACP라고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LP(Lawyers’ Privilege)라고 해서 보호하고 있다. 일본은 해석상 보호된다고 국제사회에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일본과 거의 같은 법제에서 대법원이 부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 의뢰인의 이 권리를 부정하는 나라는 필자가 보기에 없다. 19대 국회에 노철래 의원안으로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자동폐기되는 운명에 처한 이 법이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기를 희망한다.

모든 법제는 전체적인 시스템을 봐야 한다. 근시안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조금씩을 가지고 입법을 하면 부분적인 타당성이 전체시스템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 법조에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전체적인 조망능력을 갖춘 전문가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자금세탁을 막아야 한다는 부분과 게이트키퍼 책임(gatekeeper liability)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 금융위가 가장 많은 논의가 있는 미국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되었고, 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는지 궁금하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국제기준 이행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민에게 부여하고 있는 권리의 내용을 잘 살펴보고 변호사에게 책임을 부담시켰을 때 우리 전체 시스템에 줄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신중하게 입법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주요 선진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ACP나 LP가 보호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국가신뢰시스템의 중추를 이루는 변호사에게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구체적인 입법여부나 입법방향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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