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은 손해배상에 국한하지 않고, 생명유지 여부를 직접 다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브란스 존엄사소송은 김할머니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확보하고자 호흡기제거를 청구한 사건이다.

반면 2010년 서울동부지법소송은 종교적 이유로 자기결정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의 수혈치료를 거부한 사건에 대해 부모의 진료업무방해금지를 청구한 사건이다.

환아의 부모는 모두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다. 환아는 2.6kg의 심장기형아로 대동맥 우심실 기시증, 대동맥판막 폐쇄증 등이 발견되어, 심장수술을 하여야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수술은 반드시 수혈을 해야 한다.

병원윤리위원회에서는 “친권을 포기하면 응급수술을 한 후 입양을 주선하겠다”고 부모에게 권유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처의 치료거절로 퇴원시켜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들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방조죄로 처벌된 보라매병원사건과 같은 법리가 이건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수혈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하게 되었다.

이 소송에서 가장 큰 문제는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데, 송달방법과 시기가 문제된다. 신청서를 접수하고 곧바로 재판부에 협조를 구해, 집행관으로 하여금 신청당일 특별송달을 하였다. 송달 다음날 심문기일을 진행하고, 그날 바로 치료방해금지가처분결정을 받았다.

법원은 “민법상 친권행사는 자녀의 생명·신체의 유지, 발전에 부합하여야 한다. 생명권은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이고 종교의 자유를 포함하여 다른 기본권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미숙아에 대한 진료행위가 긴급하고,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점에 비추어 의료인이 필수적인 범위에 한하여 수혈행위를 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

일본에서도 유아원에서 유아가 장중첩증으로 쇼크에 빠져 응급개복수술을 하여야 하는데,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수혈동의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자 유아원장이 부모를 상대로 친권정지 및 직무대행자 선임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수술기간 중에 한하여 일시적으로 친권정지를 하였다가, 수술종료 후 친권을 회복시켜 유아의 양육책임을 지웠다. 법원은 친권과 국가의 대(對)국민생명배려의무가 충돌할 때 법익교량기준으로 “중증도, 수술의 효과와 긴급성, 수술하지 않았을 경우 생명의 위험성, 수혈을 거부하는 이유의 합리성”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따라서 부모에게 종교적 교리에 반하여 수혈동의를 강제할 수는 없다. 미숙아도 종교의 자유를 가지지만 아직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능력이 없다. 종교의 자유는 부모가 자식에게 종교결정권을 강제하지 말아야 할 의무도 있다.

환자의 동의는 헌법 제10조에 의해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생명의 유지가 우선한다. 자녀의 생명유지 이익에 반하는 부모의 결정에 대하여는 수혈방해금지가처분, 나아가 친권일시정지신청 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미성숙 아동의 인격권과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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