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은 서초동 대법원 청사 7~10층에 방이 있다. 층마다 3명씩 나뉘어 있다. 가장 좋은 자리는 가운데 방이다. 승강기에서 내리면 바로 닿는데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그래서 대법관 퇴임식이 끝나면 서열에 따라 가운데 방으로 이삿짐이 꾸려진다. 대법관실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는 4개다. 서쪽 2개가 대법관 전용이며 동쪽 2개를 재판연구관 등이 쓴다. 점심시간 같은 때 서쪽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가는 대법관들에게 둘러싸이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대법원에는 120명에 달하는 재판연구관이 있다. 전속조 재판연구관은 대법관마다 3명씩 36명이다. 공동조 재판연구관 76명은 전문분야 사건을 연구해 보고한다. 여기에 고법부장급의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도 있다. 사무실은 12~15층이다. 대법관실이 4개층이고 연구관실 4개층이며 그 중간인 11층에 대법원장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법관이라는 명칭은 제헌헌법에서 생겼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대법원 판사였다가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서 대법관으로 되돌아왔다. 미국 연방대법원 법관을 한국 사법체계에 맞춰 대법관이라 부르지만 미국말로는 정의(Justice)다. 미국에서 저스티스 이외의 법관은 저지(Judge)이고, 옮기면 판단이다. 저스티스라는 호칭에는 미국 사람들이 대법관에 거는 기대가 들어 있다. 정의를 발견하라는 시민의 명령이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간단한 게 아니었다. 첫 여성 대법관 산드라 데이 오코너가 임명된 게 1981년이 되어서였다. 오코너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연방대법원 판결문 서명란이 ‘미스터 저스티스(Mr. Justice)’에서 ‘저스티스’로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평등을 구현해야할 대법원이 남성 중심 관행에 빠져 있다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여성을 임명하고서야 바뀐 것이다.

얼마 전 대한변협이 주최한 대법관 제청에 관한 국회 토론회에 나갔다. 사실은 몇 해 전 대법관 제청 때도 나는 같은 내용으로 같은 자리에서 토론했었다. 그때나 이제나 대법관의 다양성이 절실하다는 얘기들을 했다. 철옹성 같은 대법관 획일화 배경에는 정통법관만이 대법관 직무가 가능하다는 신화가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 대법관은 미국 저스티스는 상상도 못하는 지원을 받는다. 저스티스들은 3~4명 로클럭의 도움을 받는 게 전부인데 이들 로클럭은 로스쿨을 갓 수료한 풋내기들이다. 연방대법원이 한해 100여건 판결만 한다지만 그 전에 1만건 넘는 상고허가신청을 판단한다. 반면 대법원에는 약식기소 사건이 28%에 양형부당도 상당수다. 민사도 신청·집행에 대한 상고가 30%다. 현실이 이런데도 대법원 구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세계에 유례가 없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개헌시기에 삭제하는 게 맞다. 누구도 아닌 모두의 정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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