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17세기 밀턴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주장은 공개적인 토의를 통해서 진리라고 표현되는 공동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사상의 자유시장은 국경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므로 지역을 초월한다. 공동체의 공동의 선이나 공적인 가치는 공동체가 있는 특정한 지역을 토대로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인데, 개인을 연결하는 미디어는 지역을 넘어서는 연결된 가상의 세계를 만든다.

여론에 의해서 움직이는 대중사회에서 미디어가 만드는 연결된 세계와 현실세계의 괴리는 커지는데 더 긴밀한 연결은 지역의 기반을 더 상실하게 한다. 국가 또는 지방이라는 공간 개념이 전제가 되어 논의될 수 밖에 없는 공적인 것 또는 공공성은 논의되기 어렵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구분되기 어렵다. 인터넷에서 현실 세계를 대체하는 가상의 세계의 구축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서 현실과 미디어가 만드는 세계는 더 멀어진다. 모든 곳에서 접속이 가능하며, 어느 곳에 있든지 다른 장소를 느낄 수 있다.

미디어가 연결만을 하고 현실의 지역공간을 토대로 하지 아니할 때 - 지역 기반이 없이 인터넷망을 통해서 개인들이 연결될 때 - 지역이 없는 사유는 책임을 동반하기 어렵다. 공간이 없으면 책임이 없다.

인터넷이 현실의 구체성을 배제한다는 것은 공간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동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주장의 표현을 앞세우게 되고 공간이 소멸된 미디어의 세계에서 자기 이익의 추구를 공공성이나 공적인 것에 대한 논의로 포장하는 경우가 생긴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표현의 자유가 내세우는 공정성 논의는 모든 것이 미디어에 실려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있을 수 있고 그러함에도 그것은 현실세계의 기반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 실제세계의 거주민으로서 논해야 할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미디어상에서 사라지고 공정성이 주된 논제가 되는 것은 미디어상에서 공공성논의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평등과 자유는 서로 대치되고 실제세계는 평등하지 않기에 그 논쟁이 끝이 없는 것처럼, 공정성은 객관성을 추구한다는 것이지만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고 균형을 잡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실제 세상이다.

공정성 논의만을 진전시킬 때에 모든 것을 공정하게 미디어상에서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은 미디어가 만드는 가상의 세계의 규모만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이미지인 모사물이 현실의 등가물이 되어서 현실을 지배하는 전도된 상황이 전개된다. 워싱턴 DC에 소재한 언론박물관 뉴지엄(Newseum)의 벽면에 새겨진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의 “미국인은 TV에서 볼 때까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The American people don’t believe anything until they see it on television)” 문장은 그 의미를 여러 가지로 새길 수 있겠지만 대중미디어가 만드는 세계가 현실을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표현해 준다. 이를 오늘날 표현으로 바꾸자면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는 검색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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