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이 되고 올해 2년차가 되면서, 매년 동경에서 개최하는 한·일변호사 간담회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1~2시간의 회의를 통해 귀동냥으로 선배위원들의 활동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어서, 선배위원이 십수년간 쌓아온 피해자 구제를 위한 노력과 연구를 단시간에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국 대표자들은 작년 12월 28일 피해당사자들을 배제한 채 일본정부가 10억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를 종결하려는 한일합의를 하였다. 수십년 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변함없는 태도와 결국 위와 같은 합의를 받아들인 우리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가해자에게 더 이상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무력감과 회의감마저 들기도 했다.

특히나 깊은 감정의 골을 안고 찾아오는 의뢰인을 접하는 것이 일상인 법조인의 관점에서, 결국 사건은 수년간 쌓여온 당사자 간의 감정대립을 배제하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형사처벌로, 불법행위는 당사자가 입은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금전으로 환가한 금액을 지급하게 하는 방법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도 일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배제하고 제시할 수 있는 해결이란 일본정부를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할 수 없는 이상,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동경회의에 참석하게 되었고, 솔직히 일본변호사들이 우리가 느끼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분노와 울분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과 동경 라멘 맛이나 보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간담회는 일제피해자문제에 대한 나의 기존의 생각과 태도를 바꿔놓았다. 일본변호사들은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일본군 주도하에 이루어진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였던 사실을 세계와 역사 앞에 인정하고, 이러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교육을 해나가야 한다”, “현재 일본 언론은 일본국민들에게, 위안부문제를 일본군이 위안부 설치에 관여하기는 하였으나 위생관리 등을 위한 선의의 관여였고 일본군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실은 없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왜곡하여 전달하고 있는 사실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이러한 여론을 바로잡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우리 위원들 역시 “일본정부가 이번 한일합의에서 소녀상 철거를 조건으로 한 것은, 10억엔의 합의금지급으로 일본군의 끔찍한 인권유린 사실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이 사실을 역사에서 지우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한일합의에 따라 재단 설립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모욕적인 일”이라며 일본 변호사연합회에 지금까지의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해주기를 당부했다.

간담회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작년 12월 28일 한일합의를 받아들인 우리정부의 모습에서, 잔혹하게 성폭행을 당한 딸을 대신하여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로부터 모든 범행을 덮어주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받는 의붓아버지의 모습을 연상했다. 이러한 아버지라면 친권을 박탈하고 그 합의를 무효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그 딸은 앞으로 누구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언제라도 같은 피해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제피해자 문제는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고령이 된 피해자를 생각하면 금전적 배상과 일본의 사과로만 이해하기에는 피해자들의 희생이 너무 값없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희생을 가장 가치 있게 기리는 것은, 그들의 희생을 세계와 역사가 진실에 기초한 기억으로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다시는 인류역사상 적어도 개인이 아닌 정부 주도하에 인권유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일제피해자 문제에 대한 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또 일본인으로서 스스로 일본의 잘못을 철저히 인정하고,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그러한 역사를 덮어두기보다 역사교육을 통해 그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애국심을 가진 일본변호사들의 진지한 태도에 다시 한번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고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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