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은 낮과 밤이 다르다. 낮에는 명품 슈트를 입고 아름다운 여인들과 화려한 파티를 즐기지만, 밤이 되면 배트맨 슈트를 입고 범죄의 도시 고담을 지키는 ‘다크 나이트’가 된다. 정신분열적이고 음침한 안티 히어로물의 대표격인 배트맨은 영웅의 ‘이중 생활’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흥미로운 텍스트다. ‘배트맨’의 인상적인 부분은 극명히 대비되는 낮과 밤의 옷차림이다. 브루스 웨인은 분명 브리오니나 아톨리니와 같은 이태리 슈트를 입는다. 반면 배트맨은 험상궂게 생긴 박쥐 가면을 쓰고 방탄기능이 있는 근육질 슈트를 입는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킹스맨’의 대사 중 일부다. 영국 새빌로우의 근사한 슈트를 입은 첩보원은 주인공에게 옷차림의 중요성에 대하여 설파한다. 흔히 격식에 맞는 옷차림은 T.P.O(Time, Place, Oc casion)를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정장을 입은 사람은 매너도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뒤집어서 보면 매너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변호사를 하면서 평소 입지 않던 슈트를 입는다. 불편하다. 꽉 조여맨 넥타이는 사무직 근로자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일반 사무직은 요즘처럼 무더울 때에는 간소화된 복장을 한다. 하지만 법조인은 예외다. 물론 간소화 지침이 내려올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새하얀 셔츠에 타이를 매고 어두운색 슈트를 입고 끈 달린 드레스업 구두를 신는다.

슈트를 입으면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태도나 성격이 달라진다. 성품상 조용한 편이고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웬만하면 권리주장을 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인 필자가 슈트를 입고 출근을 하면 성격이 바뀐다. ‘변호사 모드 스위치’가 켜진다. 슬리퍼에 반바지, 늘어진 티셔츠와 네이비 슈트, 버건디색 타이, 드레스업 구두의 간극이 이토록 크다. 매일 아침 타이를 조여 매고 변신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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