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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법창(法窓)에 비친 서글픈 세태(世態) 한 토막
임태유 변호사(광주회·군법무 1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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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승인 2016.07.04  1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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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에 실제로 다룬 사건이다.

한 노인이 아들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를 해 달라고 했다. 노인은 당시 85세, 아들(장남)은 50대 후반.

노인은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는데 약 30여 년 전에 조강지처와 사별한 후 그때부터 6남매를 고이 길러 모두 출가시켰다.

한편, 노인은 약 10여년 전에 자신이 20년 넘게 운영해 오던 양만장(민물장어 양식장) 2곳과 전, 답, 가옥 등 전 재산(본인 추산 20억원 상당)을 유독 장남한테만 물려주고 자신은 일선에서 후퇴했다.

그런데 노인이 80세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장남 내외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가 표시 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기독교 신자다. 주일(일요일) 오전마다 교회를 나가는데 불교신자인 맏며느리는 으레 주일 아침이면 불경 테이프를 응접실에 크게 틀어놓고 노인의 심경을 건드리곤 했다.

2년 전에는 허리와 양 무릎에 통증이 심해서 서울 사는 큰 딸 집에 서너 달 있으면서 가까운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다.

약간 우선한 것 같아 몇 달 만에 아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들내외는 인사는커녕 외면해 버렸고 오히려 노인이 민망해서 그간 “잘 있었느냐, 집에 별일은 없었느냐”고 먼저 인사를 했으나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하루 세끼 중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경우는 아침 식사가 고작인데 아침 식사 때면 노인이 식탁에 나가 앉기도 전에 자기네 식구끼리 먼저 식사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노인이 식탁에 앉으면 아들은 식사도중에 다른 자리(거실)로 옮겨 식사를 마치기도 하였다.

겨울이면 노인이 전기담요를 깔고 자는데 어떤 때는 잠든 사이에 전원장치(코드)를 뽑아버리기도 했다.

노인은 갈수록 심해지는 아들내외의 학대와 불효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몇 달을 두고 밤잠을 설치며 별생각을 다 해 보았고 본처의 산소를 찾아가 울면서 신세한탄도 해 보았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더 이상 추한 꼴 보지 말고 차라리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모진 것이 목숨이라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독거를 결심했다. 얼마나 살 날이 더 남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는 날까지는 집을 나가 혼자서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다가겠다고 다짐하고, 아들내외에게 그 뜻을 피력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변호사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인복지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가부장제적인 가족제도가 거의 무너지고 핵가족제도가 차츰 정착하면서 경로·효친사상이 날로 쇠퇴해짐에 따라 학대받거나 독거하는 노인이 갈수록 늘고 있고 가출, 고독사에 이어 자살하는 노인들 수가 증가일로에 있다.

노인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즉, 노인의 행복추구권이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 기일 전에 필자는 이 사건의 쟁점은 물려줄 재산의 다과나 상대방의 부양능력 정도보다도 전 재산을 장남에게만 물려준 85세 노인이 오죽하면 아들내외 곁을 떠나 독거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청구인 본인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고 상대방을 설득하여 공개된 법정에서보다는 사전에 조정기일을 잡아 가능하면 판결이 아닌 원만한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 해달라고 준비서면을 냈다.

그런데 40대 중반의 이 사건 담당 법관은 위 준비서면을 읽어나 보았는지 틀에 박힌 질문을 몇 마디 던지더니 상대방의 부양능력에 대해서 입증을 보강하라면서 10여분 만에 재판을 마쳤다.

100세 시대가 자연스럽게 운위되고 있다. 황혼이혼, 부양료 청구 등 노인들의 송사가 늘어나고 있고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노인문제를 다루는 법관의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선 고압적인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공손한 태도로 당사자 본인의 진술한 얘기를 경청해 보고, 쟁점이 발견되면 딱딱한 법률용어보다는 쉬운 말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상대방도 같은 방법으로 설득해서 가능하면 화해권고나 조정시도로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어느 노인전문 저술가는 최근의 한 칼럼에서 노부모를 모시는 자식들의 효심에도 이른바 ‘질량불변의 법칙’이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자식들도 늙어감에 따라 그 효심의 총량이 고갈되어 힘들지 않게 해주는 것이 100세를 바라보는 노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해 줄 ‘역 효도’라고 했다.

이제는 노인들도 의식을 확 바꿔야 한다.나이 더 들기 전에 철저하게 노후를 대비하고 사려 깊은 처신으로 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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