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있을 때 지휘관이 바뀌면 소동이 벌어졌다. 취임 첫날부터 A부터 Z까지 자신의 스타일대로 바꾸라고 바짝 군기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그리 중요하지 않은 스타일에 관한 것이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원위치로 돌아갔다.

간혹 예외도 있었다. 어떤 지휘관은 부임하고 수 개월간 부대를 면밀히 관찰한 다음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여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지혜를 가르쳐준 분도 있었다. 정부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정부가 바뀌면 나름 중점을 가진 정책을 펼치려고 하고 중점은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에서 찾으려고 한다. 경제정책은 성장과 분배 중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에 따라 나뉘지만, 보수정부가 진보 정당의 어젠다를 도입하기도 하고 진보정부가 보수 정당의 성장론을 받아들이기도 해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이와 달리 대북정책은 정부의 성격에 따라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 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온 걸까.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성과를 내려면 정책은 현실적으로 의미 있게 작동할 수 있게 잘 준비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달라 몇몇 전문가의 손에서 급조되어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이전 정부 정책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하여야 연속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성과를 올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이념과 당파성의 포로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 왔고 이 점에서 어떠한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과거 노골적인 간첩조작 등 이념몰이는 거의 사라졌고 이제 북풍은 그다지 선거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된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서독이 통일에 이르기까지 취한 대동독정책은 많이 달랐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사민당 정권이 계속 추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그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사민당 정권에서 외무장관을 맡았던 겐셔는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외무장관을 하면서 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여 결국은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1972년 동서독조약은 이러한 일관된 정책의 든든한 기초가 되었는데, 특히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동서독조약 비준법률에 대하여 합헌 판결을 하여 동서독조약의 기초를 헌법 위에 올려놓았다.

5년이라는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 건 겸손의 지혜이다. 5년의 한계를 뛰어넘는 유일한 길은 이전 정부가 해놓은 것 중 잘한 것은 살려 나가고 잘못된 것은 고치며 부족한 것은 보완하는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하나 보지만, 하나같이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걸까 안타까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5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대못을 박겠다고 하는 거나 이전 정부가 한 합의를 무시해버리는 거나 그리 다르지 않다. 5년 주기로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마는 거듭된 실패에서 이제는 배울 때도 되지 않았을까.

70년 가까운 분단의 역사를 회복하려면 힘을 모아야 하고 그러려면 공감의 지평을 넓혀 가야 하는데, 그 열쇠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화이부동의 지혜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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