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하원의회 건물에는 ‘의회’라는 돋움새김 대신 ‘러시아의 생각(두마,дума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의회는 국민의 생각이고 의회의 입법과정은 국민의 뜻을 현출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입법과정 전반에 걸쳐 국민의 뜻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번에 입법과정을 소개하면서,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의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나 의원이 제출·발의하는 법안은 본회의에 앞서 필수적으로 위원회를 거치면서 수많은 심사과정을 거치게 된다.

위원회에 접수된 법안들은 아무리 많은 준비를 했어도 충분한 숙의가 배제된 ‘날 것(raw draft)’이기 마련인데, 이렇기 때문에 그 입법안들에 대한 많은 의견이 한꺼번에 들어오게 된다. 법안에 대한 찬성·반대 말고도 법안의 배경·효과 등에까지 의견이 쏟아진다. 정부나 이익단체에게 법안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므로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그들의 입김은 거셀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국회의원은 많은 눈과 귀를 열어야하기 때문에, 입법조사관이나 정당·의원실의 보좌진들로서는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선별해야 한다. 이 순간만큼은 입법 담당자에게는 상당한 균형감각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제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했던 ‘노동개혁 5대 입법(여당발의)’은 대표적인 난제(難題)였다.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정리해고, 고용보험·산재보험 제도개선, 기간제근로자·파견근로자 고용·노동 개선 등의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룬 것으로서 노사정 여러 곳의 의견이 국회로 수렴되고 있었다. 양대 노총은 입법에 관한 청원, 의견서제출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했고, 야당 또한 정부·여당안에 맞서는 입법안을 별도로 제출하면서 여야의 입장차는 더욱 커졌다.

이처럼 환노위는 여러 법안의 모든 쟁점을 한꺼번에 다루면서 각계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2014년에 국회는 특별히 ‘노사정소위원회’를 발족하여 운영하기도 했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소위원회는 ‘9.15. 노사정대타협(2015)’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상임위의 법안 논의는 파행을 반복했고, 아쉽게도 관련 법안이 전부 임기만료 폐기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처럼 다양한 국민의 생각을 듣고 수많은 논의를 거쳐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법안(때로는 법안의 일부)에 관한 합의가 도출되면, 그에 따라 소위원회·전체회의 의결절차를 밟게 된다. 최근의 입법경향을 보면 정부가 제출하거나 의원이 발의한 원래의 입법안(‘원안’)이 그대로 처리되기보다는 상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수정되고 가감되면서 ‘위원회안’이나 ‘대안’으로 조합·변형되는 경우가 대다수인 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상임위원회에 접수된 법안은 수차례의 법안심사소위원회, 전체회의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상임위원회에서 의결(가결)된다. 그 후 법안은 체계자구심사를 위해 법사위로 넘겨지고 마지막 절차는 본회의 의결이다.

다음 호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절차를 소개하면서 국회의 입법과정 소개를 마칠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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