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가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막아야”…법원, 검찰에도 동참 호소
협회는 전관변호사 수임제한해제 광고 금지, 비리변호사 징계·처벌 강화 예정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가‘전관비리 근절 대책’을 제안했다. 전관예우라는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를 뿌리 뽑기 위해서다.

법조계는 1997년 의정부법조비리 사건, 1999년 대전법조비리 사건, 2005년 김홍수 법조비리 사건 등 각종 비리사건으로 계속해서 골머리를 앓아왔다.

또 검찰 출신 A 변호사는 7개월 동안 소속 법무법인으로부터 7억원의 급여를 받고, B 전 대법관은 퇴임 후 5개월 동안 수임료로 16억원을 벌어들인 것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전관비리 행태는 최근 ‘정운호 게이트’로 이어져 국민의 사법신뢰는 최악으로 떨어졌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인의 사법제도 신뢰도는 27%로 조사대상 42개국 중 39위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도 국민의 사법신뢰도는 100점 만점에 60점을 기록했다.

변협은 “수십억, 수백억원의 사건을 수임하고 수입을 쌓는 전관 변호사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사법제도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계속해서 비리가 재발하는 것은 법조비리가 생길 때마다 법원, 검찰이 내놓은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면서 “사법제도가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장 진정한 사법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검사-변호사, 투트랙 양성

변협이 발표한 전관비리 근절책은 법률 제·개정이 필요한 장기 대책과 당장 법조삼륜이 시행할 수 있는 단기 대책으로 나뉜다.

변협이 마련한 대책 중 가장 눈에 띄는 제도는 판·검사 선발시험과 변호사 자격시험을 이원화하는 ‘투 트랙 양성 시스템’이다. 판·검사가 변호사가 되는 길을 원천봉쇄해 전관변호사 자체가 존재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마련한 방안이다. 현재 법조인선발제도는 사법시험제도와 법학전문대학원제도로 나뉘어있으며, 사법시험은 내년에 폐지를 앞두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판·검사와 변호사 양성제도를 이원화해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판·검사는 사법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국립사법관학교(ENM) 또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수료해야 한다. 국립사법관학교를 수료하면 민·형사 사건을 처리하는 일반법원에, 국립행정학교를 수료하면 행정사건을 담당하는 행정법원에 배치된다. 반면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각 고등(항소)법원 소재 변호사연수원(CRFP) 입학시험 합격 후 2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다만 변협은 투 트랙 양성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는 법조일원화를 유지하되, 우선 검사장급 이상의 검사와 고등법원 부장급 이상 판사의 개업을 금지하고, 판·검사의 정년을 70세로 연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회 역시 지난달 성명을 통해 법관의 정년을 70세, 검사의 정년을 65세로 개정하는 평생법관·검사제를 입법청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고관계 고지해 비리 막아야

또 변협은 판·검사가 변호인이나 소송대리인과 연고관계가 있을 경우 사건을 맡을 수 없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때 고등학교나 대학교, 사법연수원, 법학전문대학원 등 연고관계의 구체적 범위는 시행령에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협은 관련 법 개정에 앞서 법원에 ‘연고관계고지제도’를 우선 시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연고관계고지제도는 재판장이 재판을 시작하기 전 공개법정에서 재판부와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있을 경우 그 연고관계를 당사자 등 사건관계인에게 고지하고, 변론을 실시하지 않는 사건의 경우에는 사건 배당과 동시에 재판부가 인터넷 등에 연고관계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고관계에 의한 사건 수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변협 차원에서도 대법관 퇴임 변호사의 모든 사건을 분석해 연고관계에 의한 사건 비율을 비실명으로 공개함으로써 연고관계에 의한 사건수임을 줄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장기대책으로 △몰래변론 시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하의 형으로 처벌하고, 이를 용인한 검사와 판사도 징계할 것 △변호사법 제31조 제3항에 따른 사건수임제한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릴 것 △변호사가 형사사건 1건에 5000만원 이상을 수령한 경우 변협에 신고하게 하는 변호사보수신고제도를 변호사법에 신설할 것 등을 제안했다.

“법조삼륜, 대책 실행 필요해”

변협은 법원, 검찰에도 바로 실행 가능한 대책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법의 제·개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관련 법령이 정비되기 전부터 법조삼륜이 모두 전관비리 근절을 위해 노력해야 진정한 사법개혁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변협은 법원에 경력법관 임용 시 변호사 개업 포기 서약자를 우선 임용할 것, 재판 시 재판장의 연고관계 고지제도를 도입할 것을, 검찰에는 브로커와 무자격자의 불법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속할 것을 촉구했다.

변협 차원에서는 퇴임 1년 후 재임 시 근무처를 밝히고 수임제한해제를 광고하는 관행을 금지할 수 있도록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업무광고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또한 변호사징계규칙 제19조 단서를 적극 활용해 공소제기된 비리변호사의 혐의가 명백할 경우 판결 확정 전이라도 제명, 영구제명 등 징계를 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개선할 계획이다.

하창우 협회장은 “국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법조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정비해야 하며 정부는 과감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면서 “협회 차원에서도 실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관비리 척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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