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호걸, 배신자와 심판자, 간신과 청백리라는 명칭에 부합하는 역할에 철저하게 체화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현실에서는 명백한 역할이 부여되는 상황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특정한 방식으로 명쾌하게 드러나는 갈등이 없으며 극적인 반전과 바람직한 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 표명된 이념만이 선명하며 양극단의 신념을 취하기에는 현실은 너무 복잡하다. 고만고만한 용감함과 고만고만한 비겁함이 섞여있고 선함과 악함이 혼재하며 공과 사가 함께 있어서 누구를 쉽게 비난할 수 있는 상황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삶은 반복되기 일쑤여서 다음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극적이지 않고, 전체와 끝을 알 수가 없어서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선한 자와 악인을 가릴 수가 없어서 시간이 흐른 후에 친구로 남거나 피해를 입는 결과로만 확인이 되고, 어느 때가 결정적인 시기인지 모르고 올바른 판단을 내렸는지 알 수 없어서 시간이 지난 후의 결과를 감수하는 것으로써 그 순간의 의미와 처신의 적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실제의 삶은 밋밋한 순간들로 이루어진 일상이다.

변호사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법정드라마의 케이스처럼 그럴 듯 하지 않고 복잡하거나 단순하지도 않은 사안이 과제로 주어진다. 법리적으로 복잡하거나 중요하지도 아니한 사안이거나 승패가 선악의 판명과는 관련이 없어서 해결 과정이 주목받지 않는다. 의뢰인이 주목받을만큼 유명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주목받을 만큼 어려운 처지의 경우도 아니다. 대부분의 케이스는 중요성을 찾기 힘든 고만고만한 것이지만, 바로 그 사안들이 의뢰인에게 중요하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들의 삶의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바로 그 과제이고 살아야 할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상의 의미는 비록 그것이 주목을 받을 만하지 못하더라도 구체적인 현실의 과제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현실은 보통 주목받지 못한다. 그렇게 극적이지도 않고 눈을 끌 만하지도 않으며 한편 그렇게 우려할 만 하지도 아니한 순간들,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고 받을 수도 없으며 받기를 원하지도 않아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면서 해야할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구체적인 현실과 조우하고 현실의 사람과 만난다. 어려움이 있고 해결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종결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일은 지금 해야할 과제이므로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한 순간 한 순간의 구체적 일들이 모여서 현실의 삶을 이룬다.

도가(道家)의 전통에서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한다.

“태산(泰山)은 흙 한줌도 마다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과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문장인데 원래 왕도(王道)를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모름지기 인생에서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이더라도 그러한 일들이 모여서 삶을 이루기에 하루하루의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정도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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