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년 전쯤 유력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부터 한통의 전자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수신인을 잘못 지정해서 보낸 메일 같았는데요, 내용이 상당히 재미있었답니다.

사실 그 국회의원은 당시 국회 의장단에 속한 분이었는데, 아마도 보좌관은 모시던 의원님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메일에는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로 볼 수 있는 중장기 정치활동 플랜이 들어 있었는데요, 대략 10~15년 정도의 기간 동안 각 단계별 도전 과제를 세워두고 어떤 전략으로 접근할 것인지를 차근차근 정리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계획이 틀어지면 곧바로 가동할 ‘플랜 B’까지 마련돼 있었는데요, 꽤 치밀해 보였답니다.

한참 메일을 재밌게 읽고 있는데 그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꽤 당황하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답니다. “메일을 받으셨냐”라고 말문을 연 그는 마침내 “그냥 참고만 하시면 안될까요?”라고 사정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거의 울먹이기까지 했습니다.

못된 짓이기는 하지만 그날 저는 그 보좌관을 꽤 오랫동안 놀려먹었는데요, 하지만 기사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답니다. 처음부터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 때만해도 그 국회의원은 대통령감이 아니었거든요. 솔직히 “국회의원 되면 개나 소나 대권을 꿈꾼다더니…”라며 속으로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난다 해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답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제가 그 메일을 받는다면 상황은 다를 겁니다. 단언컨대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기사를 썼을 겁니다. 그 사이 그는 정말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유력하지는 않지만 잠재적 대권주자 명단에는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답니다. 지난 제19대 국회와 총선과정에서 여당 원로이면서도 원칙을 앞세우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찾을 수만 있다면 10년 전에 받은 그 메일이라도 다시 찾아내 기사를 써볼까 싶을 정도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지금 그 메일을 찾아내 기사를 쓴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처벌을 받게 되겠죠? 얼마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던 고 최필립씨가 문화방송 간부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사화한 어떤 기자가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를 보면 저도 처벌받을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 그 기자는 최 이사장이 실수로 끊지 않은 휴대전화 때문에 은밀한 대화를 들었고, 저는 보좌관이 실수로 보낸 메일 때문에 은밀한 계획을 알게 됐죠. 어쨌든 두 사례 모두 당사자들이 알리지 않았는데 알게 됐고 원치않는데 공개되는 거잖아요.

물론 이제와서 그 기사를 쓰지 않을 겁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 메일을 어디다 뒀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분명 잘 보관해 둔다고 뒀는데. 그런데요 만약 나중이라도 찾게 된다면 꼭 쓸 예정입니다. 혹시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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