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나라 국민은 직업에 관계없이 이렇게 여유있게 사는데, 우리 국민은 아무리 노력해도 삶이 이다지도 힘든 걸까?’ 직접 스위스 관련 업무를 하는 건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스위스에서 근무하고 아이들을 현지 학교에 보내면서 항상 내가 품고 있는 화두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서 늘 1, 2위를 다투는 스위스. 역사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 지면에서는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라는 측면에서 얘기해보고 싶다.

아이들 학교 등·하굣길에 가끔 보이는 환경미화원이 있어서, 당연히 학교에서 일하는 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학부모였다. 아무 부끄러움 없이 작업복 그대로 아이 등하교를 도와줄 수 있는 문화가 신선했다. 스위스에서 ‘노동’이란 곧 생활이어서 방학 때면 열살짜리 꼬마들이 부모님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모습, 중고등학생들이 놀이공원에서 표파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스위스 국민도 수입이 좋은 법률가나 금융업계 종사자를 부러워하지만, 근본적으로 대부분 자기가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스위스 대형마트는 주 1일 밤 9시까지 근무하고, 나머지는 7시에 폐점, 일요일과 공휴일은 문을 닫는다. 지자체 조례로 결정되는 대형마트 영업 시간 연장 여부가 정기적으로 주민투표에 회부되지만 항상 부결되었는데, 그 이유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이 연장되면 다른 가게의 영업시간도 연장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자신의 근로시간도 연장될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개개인이 소비자로서의 편리함을 찾기에 앞서 우리 모두 노동자로서 같은 입장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스위스 국민이다.

현실적으로도 스위스 국민이라면 굳이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품위 있는 삶을 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 마트 캐셔를 해도 4~5주의 여름휴가는 기본, 시간당 20프랑(약 2만4000원)을 받고, 숙련 자동차 수리공이나 배관공의 경우 시간당 노임이 200프랑에 달하기도 한다. 고물가로 유명한 스위스지만 인건비가 비싼 것에 비해 마트 물가는 크게 비싸지 않아 공립학교 보내고(만 4세부터 초중고 완전 무료, 대학도 연간 등록금 100만원 미만), 지자체에서 주는 각종 혜택(지역주민 수영장 월회비 1만원, 대중교통 정기권 할인)을 누리면서 살면 수입에 비해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동 현실 개선과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은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얘기일 수도 있고, 우리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바는 모든 사람에게 고급 일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는 일에 관계없이 고급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제네바에는 지하철이 없지만, 만약 지하철이 있었다면 그 스크린도어 수리공은 충분한 임금과 여유있는 점심 식사 시간을 누리면서, 충분한 안전장치를 갖추고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아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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