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한다. 좋은 동료를 만난 사람들은 팍팍한 직장생활이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되고, 나쁜 배우자를 만난 이들은 눈물과 탄식으로 밤을 지새우게도 된다.

어떤 만남이 우리에게 결국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누구도 불행한 만남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만남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알지 못하고, 혹 안다고 하여도 욕망에 미혹되어 눈을 감고 만다.

지금 법조계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의 만남 때문에 온통 뒤숭숭하다. 화장품 회사 대표와의 만남, 법조 브로커와의 만남은 과거 법원과 검찰에 몸담았던 변호사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일 뉴스거리로 만들었다. 법원의 누군가는 사표를 내야 했고 검찰의 누군가는 수사대상이 되었다. 그저 흔한 만남 중의 하나일 줄 알았던 어떤 만남이 법조인으로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자신들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법조인들의 자긍심에도 상처를 내었고 법조계는 추악한 집단으로 한번 더 낙인이 찍혔다. 그들의 탐욕이 만날수록 서로에게서 비린내가 묻어났고 결국엔 법조계 전체가 비린내를 풍기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정채봉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생선과 같은 만남, 가장 잘못된 만남이었다.

또 어떤 만남은 변호사에게 비참함을 느끼게도 한다. 궁지에 몰려 찾아오는 의뢰인일수록 악착같이 변호사에게 매달리며 쥐어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고도 원하는 결과를 다 얻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을 뚝 떼는 경우가 있다. 약정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동안 갖은 애를 써 준 것에 감사의 인사는커녕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그냥 등을 돌리는 것이다.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지위도 있어서 예의나 도리를 알 만한 사람들에게서조차 이런 경우를 볼 때면 마음은 더 서글퍼진다.

소용이 없어지면 던져 버리고 마는 건전지와 같은 만남을 가리켜 시인은 가장 비천한 만남이라 하였다. 의뢰인과 변호사의 만남이 비천하게 된 주된 까닭이야 건전지를 버리듯이 타인을 대하는 의뢰인의 무례와 몰염치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전지밖에 되지 못한 변호사도 사람을 보는 안목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승화시킬 내공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 볼 일이다.

시인은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라 하였다. 힘이 들 때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말이다.

얼마 전, 손수건과 같은 만남을 엮어내고 있는 공기업의 여성임원을 뜻하지 않게 업무에서 만났다. 그녀에게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진솔하게 배어나왔다.

그녀는 큰 강연회에 설 때면 운전기사로 자신을 수행하는 직원에게도 같이 무대에 서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었다. 직원의 꿈이 가수라는 것을 알고 나서 자신이 가진 것을 이렇게 나누고 있었다. 대가를 받지 않고 남에게 주면 받은 사람은 그 빚을 다른 이에게 대가없이 베푸는 것으로 갚게 되고 이런 만남이 이어져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녀는 이것을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몸으로 행하며 전하고 있었다.

그녀처럼 다른 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손수건이 된다면 변호사로서 가장 멋진 만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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