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변호사는 보통 두 종류다.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우는 열혈 정의파와 돈만 밝히는 속물. 비록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반 국민이 변호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서 흥미롭다.

국민이 변호사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는 속된 표현이 있다.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변호사의 법률서비스를 산다’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입맛이 개운치 않다. ‘의사를 산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전문 서비스제공자에게 흔히 쓰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호사에 대한 특유의 경멸적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요즘 다시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전관예우와 같이 법조계 전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산다’는 표현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가를 줬으니 ‘샀다’고 표현하는게 어떠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공익적 역할이 강조되는 변호사에게 자본주의 일반의 거래관념을 들어 정당화 시킬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사실 어떤 직업도 대가를 지불하면서 ‘산다’는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 한편 자본주의의 물화성이 극대화된 표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성매매 여성을 두고 ‘몸을 파는 여자’라고 표현하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기분 나쁜 표현임에는 틀림이 없다.

유독 변호사에게 ‘산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전관예우를 미끼로 과다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법률서비스의 특성상 무엇을 원인으로 승패가 결정되고 진행되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인색하게 수임료를 지불하려는 국민의식에서 비롯된 표현일 수도 있다.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 선임을 위해 상담 온 의뢰인이 무심결에 “1심 변호사를 샀는데”라고 해서 곧바로 “선임하셔서”라고 정정해준 일이 있다. 짧은 순간 의뢰인이 당황해서 서로 겸연쩍었던 기억이다. “나 변호사랑 같이 일 해봤는데”라는 말을 듣고 싶다. ‘샀다’는 천박한 표현보다 동지적 관계의 냄새가 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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