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짝사랑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첫 번째 짝사랑은 대학에서였는데, 한동안 열병을 앓다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하게 되면서 서서히 잊어갔다.

그 후로도 신림동 독서실, 사법연수원 강의실 등에서 어김없이 짝사랑은 찾아 왔고 말 한번 못 건네고 혼자 정리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계속되는 짝사랑에 지칠 법도 한데 이놈의 짝사랑은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되었다. 첫 직장에서 나는 다른 부서의 법적 문제에 대한 지원을 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때 우리 사무실에 방문한 그녀를 보고 한눈에 짝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2년 주기로 있던 인사이동에서 그녀가 우리 부서로 오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다. 우연을 가장하여 퇴근을 같이 하면서 미리 보아둔 와인바에 간 뒤, 적당히 술을 마시고 그 힘을 빌려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은 계획대로 되었다. 와인 한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 비웠는데 취하질 않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한병을 더 시켰고 그 한병은 내가 거의 다 마셨는데, 아뿔싸…. 다음날 아침 눈을 떴는데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구두를 보니 토사물의 흔적도 있다. 최악이었다. 와인 덕분에 짝사랑은 강제로 정리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맘에 드는 상대가 있다면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기로 다짐했다.

가장 최근의 짝사랑은 법정에서였다. 동기 변호사가 재판에 복대리를 들어가 달라고 했다. 소액사건이었기에 많이 기다리지 않기만을 바라며 법정에 갔다. 그런데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판사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피곤에 찌들어 힘이 없는 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40분 정도 재판이 늦어지는 상황이었는데 조금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이윽고 사건번호가 호명되고 판사님 앞으로 나가 당당하게 말을 했다. “원고 복대리인 백현석 변호삽니다.” 재판이 끝나고 아쉬워서 한 10분쯤 더 앉아 있다 나왔다. 그래도 말은 걸어 봤으니 나 자신과의 약속은 지킨 셈이다.

일을 하면서도 짝사랑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건의 경우는 유독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간다. 의뢰인이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거나, 어린 시절의 나와 너무 닮아 있거나 하는 경우는, 변호사가 아니라 그 의뢰인 자체가 되어 사건의 결과를 너무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사건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뢰인이 그간의 내 고민과 노력을 잘 몰라주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한번은 선배 변호사님께 이런 고민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냥 웃으시며 그때가 좋을 때라고 하셨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힘든 짝사랑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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