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머리 식힘용’이다. 서초동에서 하룻밤에도 몇 트럭씩 사라지는 ‘고기’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쇠고기·닭고기·생선·돼지고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기들이다.

소설가 한강(46세)의 ‘채식주의자’는 어느 정신 나간 여자의 짧은 일상에 관한 단편 소설이다.

속세의 기준에서 보자면 그렇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던 여자가 어느 날 꿈자리가 사나웠다는 이유로 고기를 끊는다. 여자가 꾼 꿈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 덩어리들이 가득한 헛간에서 바닥에 고인 핏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류의 악몽이었다. 비슷한 꿈이 매일 반복되면서 여자는 살기 위해 고기를 끊는다.

문제는 여자의 채식이 갑작스럽고, 기괴하게 전개되면서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남편 직장의 사장이 배석한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여자는 한사코 샐러드, 김치만 먹는다.

그 자리에 속옷 상의를 안 입고 갔다. 손·발·이·세치 혀·시선과 달리 아무것도 죽일 수 없는 유일한 신체 부위(이자 생명의 상징이기도 한), 가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란다. 고기 혐오 증상은 점점 심해져서 여자는 결국 자살 기도를 한다. 결말은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반전일 수도, 비극일 수도.

문득 지난 한달 간 고기 없는 식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패스트푸드 안에도 얇게 저며진, 짓이겨진, 다시 곱게 뭉쳐진 살점들이 있었다.

인간은 왜 이 살점들이 맛있다고 인식하게끔 프로그래밍 됐을까. 태초부터 고기를 마련하고 차지하는 과정은 탐욕과 폭력을 기반으로 했다. 현대에 와서 고기를 직접 잡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을 소비하는 수준은 탐닉에 가깝다. 살생을 끊은 인간이 고기 소비를 통해 잠재된 욕망과 공격성을 해소하는지도 모른다.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의 식단 변화가 아니라 일상의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심결에 입 안에 넣고 씹던 것들에 대해 돌이켜 보고 연민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사람의 입 안에서 와그작, 빠그작, 사라지는 것들이 고기뿐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그 안에 사람도, 영혼도, 여느 생명도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

한편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17일 알려졌다. 이 상이 도대체 뭐하는 상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등이라니 좋은 거겠지, 이날 하루 포털 사이트가 들썩였다. 나부터도 별 관심 없다가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홀린 듯이 책을 사고 말았으니, 때마침 교보문고에서 마주친 회사 선배가 혀를 끌끌 찬다. 변명하자면 제가 평소에도 단편 문학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문학상만 기대하는 한국인이 여기 있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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