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소멸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양보 없는 권리 주장과 극심한 의견 대립으로 사회 통합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건국 후 68년이 되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은 여전히 주어진 과제다.

국가는 사회구성원 간의 협약에 의한 힘의 균형이 잡힌 상태가 주는 안정감과 신뢰 위에 존재하는데, 키케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를 권위를 지닌 질서(otium cum dignitate)라고 부를 수 있겠다.

라틴어 오티움 쿰 디그니테니(otium cum dignitate)는 일하지 않고 책을 읽거나 저술을 하면서 품위있게 시간을 보내는 유유자적 또는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오티움(otium)은 한편으로는 국내의 안녕 또는 법질서를 의미하므로, 평화로우면서 질서있고 여유로운 균형잡힌 이상적인 상황을 가리킬 수 있어서 키케로는 이를 ‘권위를 지닌 질서’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권위와 질서를 세우는 과제는 모든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이면서도 법률가는 이 일을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는 재능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법률가의 과제다.

법률가는 매일 발생되는 개개의 구체적인 사안을 다루는 업무를 하면서도 통합된 단일한 법체계 하에서 통일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질서(그 연원이 자연법이건, 헌법이건 간에)와의 관계에서 현실을 조명할 수 있어서 이른바 질서에 대해서 능숙한 자이다.

법률가는 경험을 통해서 형평의 저울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법률가는 실무 경험을 통해서 현실에서의 인간의 심성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서투른 낙관론을 추종하지 않고 객관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으며 낭만적인 조류에 휩싸이지 않기에 유토피아에 대한 맹신이나 자종족중심주의 같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법률가는 형평의 법정이 요구하는, 눈을 가리라는 명령에 기꺼이 따르는 자다.

법률가는 실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개개의 사안을 구체적 개별적으로 다루기에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거대 담론에 기초한 섣부른 사회공학의 실험을 맹종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의 상황에서 형평을 찾아가는 노력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균형점에 도달할 수 있다.

형평을 찾는 저울은 사안에 따라서 어느 한편에 위치하게 되지만 항상 한편으로 기울지는 않으며 균형을 찾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법률가는 권위를 지닌 질서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공화국 로마가 제국의 시기로 전환하는 시기에 공화정을 지키고자 했던 키케로는 아테네의 솔론등의 업적을 거론하며 “사실상 국가를 세우거나 세워진 국가를 유지하는 것보다 인간의 덕(德)이 신(神)의 의지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는 경우란 없다”고 말함으로써 국가라는 정치적 삶을 구성하는 노력을 시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개인의 행복은 각자의 덕을 고양하여 실현하는 것이고 국가의 질서 가운데 그러한 덕이 온전히 발휘되는 것이라면 온전한 정치 질서를 세우기 위한 노력만큼 고귀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인 5월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마음의 질서, 권위를 지닌 질서의 수립을 위한 법률가의 책무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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