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기자는 대법원장의 전방부대 위로방문에 동행한 적이 있다. 그 부대는 대법원장이 군 법무관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대법원장은 그날 부대를 돌아보면서 추억에 잠긴 듯 보였다. 사단장의 영접과 장병들과의 식사시간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단 법무참모부 건물에서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단 법무참모는 대법원장의 소싯적 재판기록을 꺼내 놓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마치 눈앞에 홍안의 대법원장이 군복을 입고 서 있는 상상에 빠졌다. 잠시 뿐이었지만 추억여행을 다녀온 대법원장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위문을 하러 왔는데 힐링을 하고 간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사법부 고위관계자들도 기분이 좋았다. 법무참모 손을 잡은 채 연신 ‘수고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법원행정처 고위관계자는 부대 측이 제공한 버스에서 법무참모 옆자리에 앉아서는 “연수원 출신이냐? 몇 기냐” 등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법무참모가 몇달 뒤에 전역한다고 대답하자 그 고위관계자는 “꼭 판사 지원하라”며 “이렇게 훌륭한 친구가 판사가 돼야 한다”는 덕담을 건냈다. 돌이켜 보건데, 그날 이야기는 딱 여기에서 끝을 맺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재치있고 젊은 법무장교가 대법원장에게 추억여행을 선물한 훈훈한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부친께서 0000이십니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도 있고… 그래서 꼭 판사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 순간 그와 대화를 나누던 법원행정처 고위관계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좁은 버스 안이라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들에 심드렁해져 있던 내 귀도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버스 안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기라고?”라며 다시 한번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이름과 전역시기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분위기가 갑자기 진지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는 “진작 말하지 그랬어. 그럼 신경을 썼지. 전방까지 안와도 되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현직 판사들로 법원행정처 고위직이었다.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긴다.

최근 로스쿨 입시와 관련해 충격적인 사실들이 공개됐다. 입학서류에 부친이 대법관이라거나 검사장 혹은 대형로펌 대표라는 등 기재해서는 안되는 내용을 기재한 합격자들이 24명이나 존재한다는 것 이다. 입시부정은 없었다는 것이 교육부의 공식입장이지만 이것을 입시부정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고 입시부정이라고 하겠는가? 당연히 ‘현대판 음서제’라며 로스쿨 폐지주장을 해온 사람들의 목소리에 앞으로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사법시험제도는 괜찮을까? 권력과 지위의 세습통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지금껏 기자가 엿본 법조계의 속살은 ‘오십보 백보’ 쪽에 더 가까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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