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앞 횡단보도를 마주건너오던 L변호사가 내게 말을 건넸다. “사복을 입었네요.” 그날 나는 사무실을 쉬고 은행 업무만 보러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온 참이었다. 사복(私服), 생각해 보니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고2 때 복장 자율화가 되면서 교복을 벗은 세대라 사복이란 말은 교복부터 떠오르게 했다. “그럼 법정에 갈 때 입은 옷은 교복이었던 셈이네요”라고 화답했다.

사실 사복의 반대말이 꼭 교복인 건 아니다. 군인들에게는 전투복이 되듯이 신분과 직업에 따라 각기 다를 터이다. 굳이 고른다면 변호사들의 복장은 교복보다 전투복으로 불러야 맞겠다. 소송은 말 그대로 싸움이고 법정은 전장이니 말이다. 전투복이라면 변호사의 전문성과 신뢰가 느껴지면서 호감을 주고 법정의 권위를 해치지 않는 복장이어야 하겠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변호사가 복장에서 직업상 품위유지와 개인적 개성추구의 균형을 맞추기는 예로부터 적잖은 고민거리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법정가운을 입지 않는 미국에서도 흥미로운 판례들이 제법 있었다.

1974년 2월 6일 변호사 샌드스톰(Sandstorm)은 판사 타이슨(Tyson)의 법정에 노타이로 갔다가 법정에 출석할 땐 넥타이를 매라는 지시를 받는다. 샌드스톰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입겠다고 대답했고 같은 해 3월 12일 넥타이 없이 그 법정에 출석했다. 타이슨은 법정모독으로 변호사를 3일간 구금에 처했고 상급법원도 이를 지지했다. 여하튼 법원은 사법제도의 적절한 운영을 위해선 넥타이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편 여성변호사의 경우는 남성변호사보다 선택의 폭이 조금 더 넓어 보인다.

캐롤린 펙(Carolyn Peck)은 1967년 12월에 변호사 등록을 한 27세 여성이었다. 1968년 10월 3일 그녀는 무릎 위로 5인치 이상 올라간 짧은 원피스 치마를 입고 판사 파커 스톤(Parker Stone)의 법정에 출석했다. 남성이었던 판사는 그녀가 적절한 복장을 할 때까지 자신의 법정에 나오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시대적 사정을 고려하면 여성변호사의 옷이 법정에서 주의를 흩트리거나 불손한 복장이 아니라고 하였다.

1960년대 말, 법정 밖 시민의 미니스커트를 풍기문란으로 단속하던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 법원의 시대적 상황 인식은 정말 앞서간 것 같다.

1975년 1월 28일 여성변호사 데 카를로(De Carlo)는 회색 울 바지와 회색 스웨터에 녹색의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법정에 나갔다. 남자 판사는 자신의 법정에서 바지나 화려한 색깔의 원피스까지도 허용할 수 있지만 스웨터는 안 된다고 하였다. 법정모독으로 회부된 사안에서 법원은 판사가 말한 ‘적절한 법정 복장’이라는 것이 너무 모호해 법정모독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였다.

그렇다고 미국 법원이 여성변호사들에게 아무거나 자유롭게 입어도 좋다고 한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알아서 입되 부적절하거나 법절차 진행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남성변호사들보다 더 어려운 주문을 받은 건 아닐까.

날씨는 점점 변호사들이 재킷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풀고 싶게 한다. 전투복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스러운 계절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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