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선거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위임받은 권한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하고 신뢰를 잃은 입법부를 주권자가 심판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입법 권력의 교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지만, 그 희비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 권력은 어떠한가?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와 같은 최고사법기관은 다수결민주주의의 폐해를 보완하고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속성상 일반적으로 선거제도와 거리를 두어왔다.

그렇다고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국민의 의사가 무시되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사법권도 본래 주권자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고 있을 뿐이고 정치의 사법화 현상도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최고사법기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역대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시대에 따라 비율이 조금씩 다를지언정 우리 국민들의 이념성향은 진보, 보수, 중도가 골고루 섞여 있다. 이러한 이념분포를 반영하여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법조인이 모여 있어야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고 논쟁과 타협을 거친 결론이 사회를 통합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유리하다. 보수일색의 구성은 편향된 결론으로 이어지고 반대편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별, 학력, 지역에 따른 임명도 가치관의 다양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흑인이나 여성을 최고사법관으로 임명한다고 해서 이들이 차별적인 백인이나 남성의 시각에 동조한다면 민주적 다양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최고사법기관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법으로 미국의 예를 참고할 수 있다. 연방대법관을 포함한 연방판사는 대통령이 연방 상원의 인준을 받아 임명한다. 연방대법원장은 대법관을 포함한 연방법관의 임명에 관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냐 공화당 출신이냐, 연방 상원의 다수를 어느 당이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대법관 임명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보수성향의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망함에 따라 후임 대법관 임명 문제로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연방 상원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4대 4로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후임 대법관의 성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장의 개입 없이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연방 상원이 연방대법관의 임명에 관여함으로써 사법부의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자체적으로도 이념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한다. 일부 대법관은 임명한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성향을 바꾸어 전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거나 상대편에 가담하기도 한다.

우리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의 구성에 주권자의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거의 보수 일색인 상황에서 진보성향의 인사가 임명될 필요가 있는데도 거꾸로 진보라서 안 된다는 식이다. 임명방식이 어찌되었든 최고사법관의 임명에 주권자의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는 사법기관을 국민의 관심과 신뢰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이는 사법기관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고사법기관의 구성과 운영이 민심과 동떨어지는 상태가 계속되면 변화를 모색하는 일도 결국 주권자의 손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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