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태국 방콕 난민수용소에서 소요가 발생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난민수용소에 1년 이상 수용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조속한 한국 입국과 수용 환경 개선을 요구한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당시 나는 우여곡절 끝에 그곳을 들어갈 수 있었다.

90평 남짓한 곳에는 350여명의 여성들이, 또 다른 곳에는 90여명의 남성들이 머물고 있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습하고 찌는 듯한 더위, 오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겨우 발 디딜 틈만 있는 공간에 만삭의 임산부도 보였다. 모두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탈출한 이들이었다. 철창 너머의 얼굴들과 마주친 순간, 가슴이 죄여왔다.

변호사의 사명은 기본적 인권옹호 및 사회 정의실현인데….

다행히 우리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후 난민수용소의 환경은 개선되었고, 북한이탈주민이 한국 입국까지 걸리는 기간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자기 생명을 걸면서까지 떠나야 했으며, 당하지 않아도 될 고초를 겪게 되었는가. 그 물음은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벌거벗은 채로 모욕당하고 수난을 겪는 이들이 바로 가까이, 우리 곁에 있었다.

두 차례 태국 방문은 내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하나원과도 인연이 닿아 매달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상담과 강연 등을 하게 된 게 올해로 8년째다. 무수한 사연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정치적인 사안을 논하기에 앞서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문제삼아야 할 중대사안임을 깨닫는다.

지난 3월 13일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제31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개최되었다. 2015년 5월에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협의지위를 취득한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번 인권이사회 세션에 적극 참가하여 북한인권결의안 도출에 힘쓰기로 했다. 나도 사무총장 자격으로 변협 북한인권특위원회 위원장이신 김태훈 변호사와 위원 세분과 동행할 수 있었다.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마르주키 다루스만의 보고에 관해 각국 대표들이 논박을 벌였다. 탈북자들의 증언 또한 이어졌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6개국의 반대가 있었으나 유엔 인권이사국이 사안의 심각성에 동의하였고, 결국 24일 무투표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대표단은 각국 대표들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입장을 전달하였다. 그 자체로서도 나름의 성과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선언은 오래된 미래를 향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여받은 이성과 양심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북한주민의 인권 문제 또한 여기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북한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인권의 보편적 가치가 침해되고, 억압과 폭력이 구체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한에서만 미래는 우리에게 가능한 현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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