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점심시간. 후배들과 함께 서초동 법원 삼거리 근처 식당을 찾았다. 유명한 식당은 아니지만 동태찌개를 꽤 괜찮게 하는 곳이어서 종종 들르던 곳이었다. 이집의 단점이 있다면 양이 많다는 것. 동태찌개 ‘소짜’를 시켜도 3명은 넉넉히 먹을 수 있을 정도다. 혹시나 싶어서 ‘중짜’를 시켰다가는 반 정도는 남기게 된다. ‘통상적인 식당가의 거래관행’을 고려할 때 인심이 매우 후한 집이 아닐 수 없다.

그날도 우리는 늘 먹던 대로 동태찌개를 주문했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인지 ‘소짜’가 아닌 ‘중짜’를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앞에는 커다란 찌개냄비가 올려졌다. 우려했던 대로 한계를 훨씬 초과하는 식사량에 약간의 후회가 들었을 무렵, 우리는 ‘중대한 하자(!)’를 발견했다.

“어! 아줌마, 우리 동태찌개 시켰는데… .”

하지만 우리는 하려던 말을 마치지 못했다. 식당 종업원의 날카로운 짜증에 그만 말 허리가 잘려버렸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예욧. 분명히 김치찌개라고 해놓고… .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우리가 언제…’ 싶었지만 통상 이런 상황에서 계속 따지고 드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바쁜 점심시간에 김치찌개가 맞니 동태찌개가 맞니 하며 옥신각신 하는 것도 민망하고, 식당 아줌마를 상대로 다툼을 벌여 무슨 부귀영화를 볼 것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잘못 나온 음식을 그냥 먹기로 했다. 원치 않은 음식이어서 그랬는지 찌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남겼다.

“그냥 ‘소짜’ 시킬 걸 그랬나 봐요. 양이 너무 많아”

계산을 할 무렵 뒤에 서 있던 팀원 하나가 ‘끄윽-’ 트림을 하며 함께 낮게 중얼거렸다. 다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 의미였고, 누굴 들으라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하는 일종의 ‘품평’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소짜시키라고 했잖아욧! 중짜는 많다고 그랬잖아!”

느닷없는 그녀의 일갈에 우리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쫓기듯 식당을 나와 바깥바람을 맞고 나서야 정신이 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아줌마 대단한데?”

“그러게요. 정치하면 되겠어요”

그날 남은 점심시간 동안 우리는 그 식당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어느 당에 어울린다’는 둥 ‘지역구는 어디’라는 둥….

총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이유는 선거를 계기로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억지를 잘 쓰는 것을 정치인의 주요 자질로 꼽는 사회에서 선거가 정말 ‘민주주의의 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합리적 토론과 민주적 합의가 아니라 ‘누가 더 큰 목소리로 얼마나 억지를 잘 쓰느냐’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좌우된다면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는 걸까?

뻔한 결론인지 모르겠지만,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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