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의 인권상황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장에서 증언되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의 정치범수용소, 강제여성할례 등 악습에 의한 위험천만한 여성인권 침해, 내전으로 인한 대량학살, 즉결처형 등 사례들을 듣고 있으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이러한 인권불량국가와 인권정상국가를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권침해 사건의 발생 여부나 그 빈도를 떠나, 인권침해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시정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인권이사회의 모든 논의는 해당 인권침해자를 정의의 법정에 세우는 것, 인권침해자의 불처벌(impunity)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대부분 마무리된다. 일부 국제인권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이 역주행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물론 그들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여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인권불량국가로 추락하지 않고 여전히 인권정상국가의 틀 안에서 국민의 인권증진과 보호를 위한 발전 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인권침해를 시정할 수 있는 견고하고 안정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침해를 시정할 수 있는 시스템, 그것은 건강한 사법제도, 민주적 선거제도, 법의 지배, 공직부패 방지 등 사회제도 전반을 관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집권세력이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누르는 인권침해를 행하고 있다고 할 때, 이러한 인권침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독립적인 사법부의 존재, 중립적인 검찰권의 행사, 공정선거를 통한 민주적 통제, 부패하지 않은 투명한 공직 수행과 같은 기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러한 인권침해는 비록 적지 않은 시간과 희생이 소요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시정될 것이고 그 책임자는 법적,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몇년 전부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에 관한 논의를 ‘모범적 거버넌스(good governance)와 인권’, ‘인권, 민주주의, 법의 지배(human rights,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라는 의제하에서 심도있게 진행해오고 있다. 그리고 인권이사회 의장국인 우리나라는 이러한 중요한 논의에 관한 인권이사회 결의안을 주도하는 핵심그룹 국가로서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여 참여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강자에 의한 약자의 인권침해, 권력남용에 의한 고문이나 살인 사건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로 인한 인권침해는 반드시 구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무섭고 절망적인 것은 우리가 북한의 사례에서 안타깝게 목도하는 바와 같이, 그러한 인권침해가 구제될 가능성 자체가 없거나 매우 희박한 사회, 정상적인 거버넌스가 작동되지 않는 사회이다. 사법부 독립의 헌법정신과 초심을 잊고 사법관료화되고 있는 판사,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검찰권 행사의 사명감과 기개를 잃어가고 있는 검사, 부정부패에 관대한 문화와 이를 방조하는 온정주의적 부패사건 처리… . 혹시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징조들이 슬며시 내비친다면 한두건의 단편적 인권침해 사건보다 이를 더욱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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