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만 하는 경우다. 얼마전 ‘기울어진 운동장’ 사건의 재판에 나간 적이 있었다. 정치적 은유가 아니다. 승패가 거의 결정된 사건을 말 그대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대리할 때를 말한다. 더구나 상대방 대리인은 법조경력 30년차 선배 변호사님. 학교에서는 모두 공평한 상황에서 같은 시험을 보고 같은 채점기준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이미 결정된 불리한 사실관계에서 대리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머리를 싸매고 공방의 방법을 찾지만 사실관계를 바꿀 수도 없고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든다.

어쩔 수 없이 말이 안되는 주장을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입증 취지가 불명확한 증거신청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판사나 상대방 대리인으로부터 지적을 받는다. 내심에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데. 방청석에는 의뢰인이 지켜보고 있고요’라는 말이 맴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한참을 상대방 대리인의 공격에 진땀을 빼다가 결국 원하는 증거신청도 제대로 못했다.

재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다 ‘이불킥’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몰라서 그런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그런건데 젊은 변호사가 뭘 잘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할까’ 자격지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한편 판사는 판결로, 검사는 공소장으로, 변호사는 서면으로 말하면 된다고 한다.

결과로 말해주면 되는데 과정에서 굳이 비난 아닌 비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구태여 줄 필요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물증이나 진술증거도 거의 확보되어 있는데, 수사기법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소하면 되지, 왜 협박을 할까.’ 그럴때면 뛰어 내리지 못하게 좁게 만든 검찰청 창문을 물끄러미 본다.

사실 필자도 유리한 사건에서 상대방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마음에, 혹은 기묘한 승부욕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세계의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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